히잡
히잡 그 신비를 벗기며
믿는 여성들에게 일러 가로되 그들의 시선을 낮추고 순결을 지키며 밖으로 드러나는 것 외에는 어떤 유혹하는 것도 보여서는 아니 되니라 그리고 가슴을 가리는 머리수건을 써서
성 꾸란 24:31
그렇게 함이 가장 편리한 것으로 그렇게 알려져 간음되지 않도록 함이라 실로 하나님은 관용과 자비로 충만하심이라
성 꾸란 33:59
히잡에 대한 오해
오늘날 대중매체는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편견을 반복하여 보여준다. 대중매체에 묘사된 베일을 쓴 무슬림 여성은 부당한 모욕과 억압과 착취를 당하고 있거나 광신도나 근본주의자로서 비춰지고 있다. 이러한 묘사는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히잡에 대한 여성들의 특별한 감정들을 왜곡하여 해석하는 것으로 히잡을 쓰는 여성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무슬림 여성의 선택
아르칸사스 대학의 영어와 중동학과의 부교수인 모흐자 까흐프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히잡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히잡을 써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나는 히잡에 깊이 있는 아름다움과 위엄이 갖추어져 있다고 믿는다. 히잡은 내 인생에 행복과 아름다움을 가져다주었고 언제나 나를 매료시킨다”
18세 소녀 파티마 칸은 이렇게 말한다.
“나에게 히잡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히잡은 하나님에게 더 가까이 다가 갈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히잡을 씀으로 인해 무슬림으로서 인정받고 인내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여성은 이슬람과 무슬림의 눈에 띄는 대표자로서 막대한 책임감을 지닌다. 히잡을 쓴 여성은 어디서든 이슬람을 믿는 사람으로서 눈에 띈다. 이슬람에 대해 편견이 가득한 국가에서 무슬림 자매는 이슬람의 진실을 보여줄 기회를 갖게 된다.
내면의 히잡
히잡과 관련된 가장 큰 책임은 히잡이 단순한 베일 이상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내면의 정절이 중요한 문제다. 내면의 도덕
체계는 외면에 보이는 베일에 의미를 부여한다. 내면의 도덕 체계는 여성의 전체적 행동 처신에 나타난다. 내면화된 정숙을 외부의
히잡을 통해 보여줄 때 선지자님께서
정해놓으신 아름다움의 예시가 될 수 있다.
"히잡은 그 자체로 봐서는 단지 한 조각의 헝겊에 불과하다. 히잡을 쓰는 것만으로 여성의 도덕적 가치나 신앙심의 전체적 지표로 삼아서는 안 된다. 도덕적 가치나 신앙심을 보여주는 행실을 보아야 하며 그 행실이 히잡에 의미를 부여한다."라고 까흐프는 진술한다.
21세 사바는 대학원생이다. 사바는 17세 때, 히잡을 쓰는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지금도 그녀는 내면의 히잡을 배우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가장 크게 깨달은 바는 히잡이 머리 위에 쓰는 단순한 스카프가 아니라 심장을 덮는 베일 그 이상이라는 것이다. 히잡은 외부의 덮개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정숙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파티마 칸은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에서 무슬림이 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히잡을 쓸 때마다 이렇게
생각한다. 나에게 히잡은 매우 중요하다.”
“히잡은 불행하게도 우울한 면을 가지고 있다. 히잡을 쓰면 차별을 당하거나 억압받고 있는 사람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을 위해 히잡을 쓴다. 다른 사람의 강요가 아닌 내 자신 스스로 히잡을 쓰기 원한다.” 라고 이만은 말한다.
남자를 위해 인생을 계획한다?
히잡을 쓴 여성들은 남성을 위해 자기의 인생과 신체를 다듬고 계획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히잡을 쓰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나를 생각하는 가에 기초해 내 자신을 생각하곤 했다. 사춘기 때 나의 행복은 다른 사람들, 특히 남자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 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내 자신에 대한 의견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나는 자존심을 갖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스스로 얼마나 아름답게 느끼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나를 아름답다고 생각하시는지 아는 것이 나를 아름답게 한다.”라고 사라는 말한다.
이슬람은 겸손과 신앙과 정숙으로 가득한 세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