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꾸란 낭송


성 꾸란 전체 낭송
by Muhammad Siddiq al Minshawi

성 꾸란의 한국어 번역 낭송


성 꾸란 전체 낭송
한국어 번역 포함


주요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개념

자키르 압둘 카림 나잌 박사 /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문

 

현대 문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하나는 없이 많은 종교와 윤리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류는 언제나 체계 안의 자신의 위치와 창조된 이유를 이해하려 노력해왔다.

 

아놀드 토인비는 오랜 세대를 거친 인류역사를 연구하고 그 결과를 방대한 10권의 저서로 집필하면서 종교는 인류 역사의 중심이라고 결론지었다. 1954 10 24일 영국의 옵서버지(The Observer)에 집필한 바는 다음과 같다:

“존재의 신비를 여는 열쇠는 바로 종교에 있다는 믿음을 재 확신하게 되었다.

 

옥스퍼드 사전에 종교란 ‘순종과 숭배의 대상인 신이나 신들에 내재된 초인적 지배적 힘에 대한 믿음’이라고 정의된다.

 

세계의 주요 종교는 모두 우주의 신 혹은 최고의 신적 존재가 전지전능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들 종교의 신도들은 자기가 숭배하는 신이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신도에게도 같은 신의 위치를 갖는다고 믿는다.

 

마르크스주의와 프로이트 이론 등의 비종교 가치관은 체계 있는 종교의 뿌리를 공격하려 시도했으나 결국 스스로 종교와 같은 믿음적 체계를 발전시키게 되었다. 예컨대 공산주의는 비단 종교에서 볼 수 있는 설교적 성격을 갖는 공약과 열정을 무기로 세계의 곳곳에 퍼져 나갔다.

 

종교란 인류가 생존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존재다. 성 꾸란에 계시된 다음의 구절을 보자.

 

성서의 백성들이여 우리들이나 너희들을 막론하고 하나의 말씀으로 오라하여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 무엇도 하나님과 비유하지 아니하며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주님과 비교하지 말라 이르되 만일 그들이 배반한다면 실로 우리는 하나님의 유일성을 믿는 무슬림임을 지켜보라 말하라 [성 꾸란 3:64]

 

다양한 종교에 대한 연구는 필자에게 매우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 필자는 현존하시는 신의 지혜로 모든 이들의 영혼이 창조되었다는 믿음을 재 확신하게 되었다. 인간의 심리구조는 창조주를 부인하도록 억압받지 않는 한 결국 신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신의 존재를 믿기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마찬가지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어떤 전제 조건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세계의 주요 종교 분류

 

세계의 종교는 크게 셈족의 종교와 비()셈족의 종교로 분류된다. ()셈족의 종교는 아리아인의 종교와 비()아리아인의 종교로 나뉜다.

 

셈족의 종교

 

셈족의 종교란 셈족에서 유래된 종교로, 성경에 따르면 사도 노아(평화가 깃드시기를)의 아들 셈의 자손들이 셈족이라 불린다. 유대인, 아랍인, 아시리아인, 페니키아인 등이 셈의 자손으로 이들의 종교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다. 셈족의 종교는 사도의 종교로 사도에게 계시된 신의 인도를 믿는다.

 

()셈족의 종교

 

()셈족의 종교는 아리아인의 종교와 비()아리아인의 종교로 구체화된다.

 

아리아인의 종교

 

아리아인의 종교는 아리아인들에서 기원을 갖는 종교다. 아리아인은 기원전 1500년에서 2000년 사이 이란과 북인도 지방에 걸쳐 큰 세력을 이루었던 인도 유럽어족이다.

 

아리아인의 종교는 베단타 종교와 비()베단타 종교로 분류된다. 베단타 종교는 힌두교와 브라만교로 알려져 있으며 비()베단타 종교는 시크교, 불교, 자이나교 등으로 구체화된다. 아리아인의 종교는 거의 모두 비()사도의 종교이다.

 

조로아스터교는 아리아인의 종교로 힌두교와 관계없는 비()베단타 종교에 속하며 사도의 종교라 여겨진다.

 

()아리아인의 종교

 

()아리아인의 종교는 다양한 기원을 갖는다. 중국의 유교와 도교가 있으며 일본의 신도 등이 있다. 대부분의 비()아리아인의 종교는 신에 대한 개념을 갖지 않는다. 종교라기보다는 보통 윤리체계라 부fms.

 

종교에서 정의하는 신의 정확한 개념

 

단순히 종교인들이 행하는 관습에 따라 신의 개념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많은 종교인들이 자신의 경전에 계시된 신의 개념에 대해 무지하다. 어떤 종교에서 정의하는 신의 개념을 알고자 한다면 그 종교의 성서를 연구하여 판단함이 바람직하다.

 

이제 세계의 주요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개념을 각 종교의 성서의 연구를 통해 알아보자.

 

 

힌두교의 신의 개념

 

아리아인의 종교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힌두교다. 힌두라는 단어는 인더스 강 계곡 너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페르시아어다. 일반적으로 힌두교란 베다와 우파니샤드와 바그와드 기에타에 기초한 종교적 믿음을 뜻하는 총체적 단어이다.

 

힌두교에서 공통된 신의 개념

 

보통 힌두교란 다신교라고 알려져 있다. 사실인즉 많은 힌두교도 또한 다수의 신에 대한 신앙 고백을 통해 이를 증언한다. 3명의 신을 섬기는 힌두교도가 있는 반면 무려 3 3천 만 명이나 되는 신을 숭배하는 힌두교도도 있다. 한편 경전에 해박한 힌두교도는 단 한 분의 신을 섬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힌두교도의 다신사상은 무슬림의 유일신 사상과 매우 큰 대조를 이룬다. 다신사상은 생물과 무생물, 모든 것에 신성을 부여한다. 나무나 태양 달, 동물, 심지어 사람까지도 신의 재현이다. 일반 힌두교도는 모든 것이 신이라고 믿는다.

 

반면 이슬람은 인간과 주위 환경이 신 자체가 아닌 신의 창조물이라고 가르친다. 무슬림은 모든 것이 신의 ‘소유물’이며 신에게 종속된다고 믿는다. 나무, 태양, , 그 밖에 우주 안의 모든 것들이 신에게 종속된다.

 

여기서 우리는 힌두교도과 무슬림의 믿음의 가장 큰 차이가 ‘소유물’의 유무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힌두교도에게는 모든 것이 신이 되며 무슬림에게는 모든 것이 신의 ‘소유물’이다.

 

다음의 성 꾸란의 구절을 보자:

우리들이나 너희들을 막론하고 하나의 말씀으로 오라하여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경배하지 아니하고

하나의 말씀이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경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힌두교의 경전과 이슬람의 성 꾸란을 비교 분석하여 공통점을 찾아보자.

 

바그와드 기에타

 

힌두교의 경전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그와드 기에타다. 기에타의 다음 구절을 보자.

“물질적 욕망으로 인해 이성을 상실한 이들은 반신을 섬기고 스스로 원하는 바에 따라 정한 숭배의 규칙과 규율을 따르도다” [바그와드 기에타 7:20]

위의 기에타 구절은 물질을 좋아하고 다수의 반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을 언급한다.

 

우파니샤드

 

우파니샤드 역시 힌두교의 성서이다. 우파니샤드에서 발췌한 다음의 구절을 읽어보자.

 

) “에캄 에바디티얌”

“신은 둘이 아니며 오직 유일한 한 분이시다”[찬도그야 우파티샤드 6:2:1]

)“나 카스야 카수즈 자니타 나 카드히파”

“그 분께서는 부모나 또 다른 주님이 없으시다”[스베타스바타라 우파니샤드 6,9][2 p.263)

) “나 타스야 프라티마 아스티”

“그 분과 대등한 것 아무것도 없다”[스베타스바타라 우파니샤드 4:19]

“나이남 우르드흐밤 나 티르얀캄 나 마드헤 나 파리자그랍하트 나 타시 프라티메 아스티 야스야 나마 마하드 야싸

“그 분과 대등한 것 아무것도 없으며 그 분의 이름은 위대한 영광이시다”[S.Radhakrishnand의 우파니샤드 원칙 p.736, 737]

[동양의 성서 15, 우파니샤드 2, p 253]

앞서 인용된 구절들과 성 꾸란의 다음 구절을 비교해보자.

그 분과 대등한 것 세상에 없노라 [성 꾸란 112:4]

그 분에 비유할 것 아무것도 없다 [성 꾸란 42:11]

) 우파니샤드에서 인용한 다음 구절은 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언급한다.

“나 삼드르시 티스따티 루팜 아스야, 나 카크수사 파스야티 카스 카나이암. 흐르다 흐르디스땀 맘나사 야 에남, 에밤 비두르 암르타스 테 바반티”

“그 분의 형상은 볼 수 없으며 그 분을 눈으로 본 자 아무도 없다. 마음과 이성으로 그 분을 인지하고 모시는 자 영생하리라”[스베타스바타라 우파니샤드 4:20]

성 꾸란의 다음 구절도 이와 비슷한 내용을 언급한다.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시각은 없으나 그 분께서는 모든 시각이 있으시니 그 분은 자비와 아심으로 충만하심이라 [성 꾸란 6:103]

 

베다

 

베다는 힌두 경전 중 가장 성스러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4개의 주요 베다는 리그 베다, 야주르 베다, 삼 베다, 아따르바 베다이다.

 

1. 야주르 베다

) 야주르 베다의 다음 구절을 보자.

“나 타스야 프라티마 아스티”

“그분은 형상이 없다”[야주르 베다32:3]

이어 계속되는 구절에 주목하자. 신은 태어나지 않으며 인간의 숭배를 홀로 받을 존재라고 언급한다

“그 분의 형상은 없으며 실로 영광되시어라. 그 분은 홀로 태양과 같은 빛나는 천체를 운영하시도다. 저에게 어려움을 주시 마시옵소서. 그 분은 태어나지 않으셨으며 우리는 그 분을 숭배하도다”[야주르 베다 Devi Chand M. A p.377]

) 야주르 베다 40:8은 신은 형체가 없으며 순수하다고 말한다.

“그 분은 빛나시고 형체가 없으시며 결함이 없고 순수하시며 악도 그 분을 해할 수 없다. 모든 것을 보시고 현명하시며 모든 것 위에 계시며. 이미 정해놓으신 계획이 있으시며 영원히 존재하시도다” [야주르 베다 40:8]

[야주르 베다 삼히타 Ralph I. H. Griffith p.538]

)“안드하타마 프라비샨티 에 아삼브후티 무파스테”

“공기와 물, 불과 같은 자연을 숭배한 자들은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삼브후티를 섬기는 자들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지리라. 삼브후티란 의자와 탁자, 우상과 같은 피조물에 불과한 것이라”[야주르 베다 40:9]

)다음은 기도문이다.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옵고 죄를 사하여 주시오며 길을 잃거나 방황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옵소서”[야주르 베다 40:16]

 

2. 아따르바 베다   

다음의 아따르바 베다 구절을 읽어보자.

) “데브 마하 오씨”

“진실로 신은 위대하시다”[아따르바 베다 20 58:3]

“진실로 수르야 당신은 위대하십니다. 진실로 아디트야 당신은 위대하십니다. 당신은 위대하신 분으로 당신의 위대함을 숭배합니다. 실로 당신은 위대하시십니다 오 신이시여”[아타르 베다 삼히티 2 William Dmight Whitney p. 910]

앞서 언급한 내용과 비슷한 의미의 구절을 성 꾸란에서 인용한다.

훌륭하고 높이 계심이라[성 꾸란 13:9]

 

3. 리그 베다

) 가장 오래된 베다로 힌두교도에게 가장 성스런 경전이다. 리그 베다에는 “현자들이 여러 이름으로 한 분이신 신을 부른다”라는 구절이 있다. [리그베다 1:164:46]

) 리그 베다 역시 전능하신 신에게 33개의 속성을 부여한다. 이 속성은 리그 베다 2 1절에 언급된다.

리그 베다에 언급된 신의 여러 가지 속성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 리그 베다 수브 2 3절에 언급된 ‘브라마’다. ‘브라마’란 창조주를 의미하며 아랍어로 번역하면 ‘칼리끄’다. 전능하신 신을 칼리끄, 창조주, 혹은 브라마라고 부르는데 무슬림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4개의 머리가 있는 브라마의 모습이 신으로 묘사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무슬림도 결코 묵인할 수 없다. 야주르 베다 역시 전능하신 신을 의인화시켜 묘사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나 타스야 프라티마 아스티”   

“그 분은 형상이 없다” [야주르 베다 32:3]

또 다른 아름다운 신의 속성인 ‘비쉬누’는 리그 베다 2 1절의 3번째 구절에 언급된다. ‘비쉬누’란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아랍어로는 ‘랍’이라 번역된다. 역시 전능하신 신을 ‘랍’,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 혹은 ‘비쉬누’라고 부르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힌두교가 묘사하는 비쉬누의 이미지를 무슬림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힌두교의 비쉬누의 이미지는 4개의 팔이 있으며 오른팔로 차크라(원반)를 들고 왼팔로 조개껍질을 들면서 한 마리의 새를 타거나 뱀 침상에 기대어 있다. 앞서 언급했듯 야주르 베다 40 19절에서 신의 이미지를 금하고 있다.

)리그 베다의 다음 구절을 보자.

“마 취단야드비 샨사타”

“오 동료여 한 분의 신 외 어떤 다른 것도 숭배하지 말지어다” [리그 베다 8:1:1]

[리그 베다 삼히티 9 p.1, 2 Swami Satyaprakash Sarasvate Satyakam Vidhya Lankar]

) "현명한 요가인은 정신을 집중하여 어디든 존재하실 수 있는 최고의 진실에 대해 생각한다. 그 분은 홀로 감각 기관의 기능을 모두 아시고 각 기관에 맡는 임무를 주시었더라. 진실로 창조주여 영광 받으소서 [리그베다 5:81]

[리그 베다 삼히티 6 p.1802, 1803 Swami Satyaprakash Sarasvate Satyakam Vidhya Lankar ]

 

힌두 베단타 종교인 브라만교의 계율 금언집

 

다음은 힌두 베단타 종교인 브라만교의 계율 금언집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에캄 브라흠, 드비티야 나스테 네흐 나 나스테 킨찬”

“오직 유일하신 신은 결코 두 분이 아니시다”

 

사심 없이 냉정한 마음으로 힌두 경전을 연구해 본다면 힌두교의 신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시크교의 신의 개념

 

시크교는 비()셈족 아리아인의 종교이자 비()베단타 종교이다. 15세기 말 구루 나앜에 의해 창시되었으며 세계의 주요 종교에 속하지는 않으나 힌두교에서 파생된 종파다. 파키스탄과 다섯 강의 땅이라는 의미의 펀자브라는 인도 서북부 지방에서 처음 창시되었다. 구루 나앜은 힌두교의 크샤트리아 계급(무사 계급) 출신이나 이슬람과 무슬림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시크교와 시크교도의 정의

 

시크라는 말은 사제 혹은 추종자를 뜻하는 ‘시스야’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다. 시크교는 10명의 구루의 종교로 첫 번째가 구루 나앜이며 마지막 구루는 고빈드 신그다. 시크교의 성서는 스리 구루 그란쓰로 아디 그란쓰 사히브라 불리기도 한다.

 

다섯 개의 K

 

시크교도라면 모두 5개의 K를 지키며 이는 시크교도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 케쉬(Kesh) - 자르지 않는 머리를 뜻하며 모든 구루는 머리를 자르지 않는다.

() 캉가(Kangha) - 머리를 정결히 하기 위해 필요한 빗

() 카다(Kada) - 힘과 자기통제를 위한 금속 팔찌

() 키르판(Kirpan) - 자기 방어를 위한 대검

() 카크차(Kaccha) - 무릎 길이의 특별 내복

 

물만트라: 시크교의 기본 신조

 

시크교도의 신의 개념은 ‘물만트라’라는 단어로 정의된다. 물만트라란 시크교의 기본 신조로 구루 그란쓰가 쓰여진 초창기에 생겨난 개념이다.

물만트라는 스리 구루 그란쓰 사이브 1권 자푸지 1구절에 언급된다.

“오직 한 분의 신만이 존재하며 그 분은 진정한 창조주이시자 공포나 증오가 없으신 분으로 탄생과 죽음을 맞이하지 아니하며 스스로 존재하시고 위대하시며 자비로우시다”

 

시크교는 엄격한 유일신주의를 명한다. 시크교의 신은 형체를 갖지 않으며 에크 옴카라 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시크교의 신은 옴카라라 불리기도 하는데 다음의 몇 가지 속성을 지닌다.

카르타르-창조주

사이브-주님

아칼-영원하신 분

사트타나마-성스런 이름

파르바르디가르-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

라힘-자비로우신 분

카림-관대하신 분

시크교의 신은 한 분의 진정한 신이라는 뜻으로 ‘와헤 구루’라 불리기도 한다.

 

시크교는 신이 인간의 모습을 취한다는 개념인 아바타라바다를 금한다. 전능하신 신은 인간의 모습을 취할 필요가 없다. 그 밖에 우상 숭배를 엄격히 금한다.

 

구루 나앜은 카비르에 영향 받다.

 

구루 나앜은 산트 카비르의 영향을 크게 받아 스리 구루 나악 사이브의 여러 장은 산트 카비르와 대구를 이루고 있다.

 

산트 카비르의 유명한 대구 구절 중 하나를 살펴보자.

"두크흐 메인 수미라나 사브흐 카레인 수크흐 메인 카레인 나 코야조 수크흐 메인 수미라나 카레인 투 두크흐 카에 호에”

(사람들은 고난에 직면하면 신을 찾곤 하나 행복하고 평화로운 때에는 아무도 신을 기억하지 않는다. 행복하고 평화로운 때 신을 찾는 사람에게 어떻게 고난이 있을 것인가)

 

앞서 언급된 내용과 다음의 인용된 성 꾸란의 구절을 비교해보자.

인간은 재앙이 그에게 이른 후에야 주님께 기도하며 회개하더라도 그 분은 그에게 은혜를 베푸니라 그러나 인간은 그가 구원하여 기도했던 것들을 망각하고 다시 우상을 세워 사람들을 하나님의 길로부터 방황케 함이라[성 꾸란 39:8]

 

 

조로아스터교의 신의 개념

 

조로아스터교는 고대 아리아인의 종교로 그 기원은 2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 세계에 걸쳐 단 13만 명의 신도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중의 하나로 손꼽히며 창시자는 이란 출신의 선지자 조로아스터다. 조로아스터교는 보통 파시교라고 알려져 있으며 성서는 ‘다사티르’와 ‘아베스타’다.

 

조로아스터교의 신은 ‘아후라 마즈다’다. 아후라란 주님을 뜻하며 마즈다란 지혜로우신 분을 뜻하므로 아후라 마즈다는 지혜로우신 주님이란 의미다. 아후라 마즈다는 엄격한 유일신주의의 형식을 보인다.

 

다사티르에 묘사된 신의 속성

 

다사티르에 의하면 아후라 마즈다는 다음의 속성을 지닌다.

() 그 분은 한 분이시다.

() 그 분과 대등한 것 아무것도 없다.

() 그 분은 시작도 끝도 없으시다.

() 그 분은 부모와 배우자와 자손이 없으시다.

() 형체가 없으시다.

() 인간의 시각으로 그 분을 목격할 수 없으며 인간의 사고로 그 분의 모습을 인지할 수 없다.

() 인간의 상상의 범주를 넘으신 분이시다.

() 인간 자신보다도 더 가까이 인간에게 다가가 계시는 분이시다.

 

아베스타에 묘사된 신의 속성

 

아베스타에 의하면 아후라 마즈다는 다음과 같은 여러 속성을 갖는다.

() 창조주

(야스나 31:7&11)(야스나 44:7)(야스나 50:11)(야스나 51:7)

() 가장 전능하신 분-가장 위대하신 분

(야스나 33:11)(야스나 45:6)

() 자애로우신 분-후다이

(야스나 33:11)(야스나 48:3)

() 은혜로우신 분-스펜타

(야스나 43:4, 5, 7, 9, 11, 13, 15)(야스나 44:2)(야스나 45:5)(야스나 46:9)(야스나 48:3)

 

 

유대교의 신의 개념

 

유대교는 셈족의 주요 종교 중 하나로 신도는 유대인이며 사도 모세 의 선지자로서의 과업을 믿는다.

() 신명기에 나오는 모세 의 말씀이다.

“샤마 이스라엘루 아도나이 일라 하이노 아드나 이크하드”

위 히브르어 인용문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성경 신명기 6:4]

() 이사야의 다음 구절을 보자.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성경 이사야 43:11]

()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성경 이사야 45:5]

()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성경 이사야 46:9]

() 유대교는 우상 숭배를 금한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성경 출애굽기 20:3-5]

() 신명기에도 비슷한 내용의 구절이 반복된다.

“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너는 자기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밑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성경 신명기5:7-9]

 

 

기독교의 신의 개념

 

기독교는 셈족의 종교로 전 세계에 걸쳐 대략 20억 명의 신자를 갖는다. 기독교라는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 의 이름을 딴 것이다. 예수 는 이슬람에서도 존경받는 분이다. ()기독교 종교 중 이슬람만이 유일하게 예수 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

 

기독교의 신의 개념을 논하기에 앞서 이슬람에서의 예수 의 지위에 대해 알아보자.

()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 중 이슬람만이 유일하게 예수 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 무슬림이 예수 의 존재를 부인한다면 더 이상 무슬림이라고 할 수 없다.

() 무슬림은 예수를 하나님의 가장 위대한 사도들 중 한 명으로 여긴다.

() 무슬림은 예수가 남성의 개입 없는 기적으로 탄생하였다고 믿는데, 뜻밖에도 오늘날 이를 믿지 않는 기독교인들의 수가 상당하다.

() 무슬림은 예수가 신의 허락으로 고인에게 다시 생명을 주었다고 믿는다.

() 무슬림은 예수가 신의 허락으로 장님을 눈뜨게 하고 나병환자를 치료했다고 믿는다.

 

무슬림과 기독교인은 예수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그렇다면 예수에 관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가장 큰 견해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기독교인이  그리스도에게 부여하는 신성의 유무에 있다. 기독교의 성경을 연구해 본 사람이라면 성경 어디에도 예수 께서 직접 자신을 신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실 성서 전체를 읽어보아도 예수  스스로 “나는 신이다” 혹은 “나를 숭배하라”라고 주장하는 구절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오히려 예수 의 말씀은 그와 정반대이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 의 말씀을 인용하여 보자.

“나의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요한복음 14:28)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요한복음 10:29)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마태복음 12:28)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누가복음 11:20)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요한복음 5:30)

 

예수 그리스도의 임무-그는 법을 완성하기 위해 오셨다.

 

예수 는 스스로 신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으며 그의 임무를 분명히 밝힌다. 신은 앞서 계시하신 유대교의 법을 재확립하기 위해 예수를 보내셨다. 마태복음의 다음 구절이 이를 확증한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보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성경 마태복음 5:17-19)

 

신은 예수 를 보내셨다.

 

성경의 다음 구절은 선지자로서의 예수에 대해 언급한다.

“너희의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성경 요한복음 14:24)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성경 요한복음 17:3)

 

예수는 자신에게 부여되는 신성을 부인한다.

“어떤 사람에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성경 마태복음 19:16-17)

성경에서 인용한 위의 구절은 예수의 신격화와 예수의 희생을 통한 구원의 교리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예수 는 누구든지 구원받고자 한다면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가르친다.

 

나사렛 예수 -신의 선지자

 

예수가 신의 선지자라는 이슬람의 믿음을 옹호하는 성경의 구절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노라” (사도행전 2:22)

 

가장 으뜸가는 계명은 신이 한 분이시다는 믿음이다:

 

성경은 기독교의 삼위일체의 교리를 부인한다.

“서기관 중 한 사람이 저희의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대답 잘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다” (성경 마가복음 12:28-29)

 

 

이슬람의 신의 개념

 

이슬람은 셈족의 종교로 전 세계에 걸쳐 12억 명 이상의 무슬림이 있다. 이슬람이란 단어는 알라의 의지에 순종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무슬림은 꾸란이 사도 무함마드께 계시된 신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이슬람은 알라께서 그 분의 유일성에 대한 메세지와 부활의 날에 있을 심판에 대해 여러 시대에 걸쳐 사도와 선지자에게 계시하셨다는 것을 믿는다. 이슬람 신앙의 기초 중 하나는 아담에서 시작하여 노아, 아브라함, 이스마일, 이삭, 야곱, 모세, 다윗, 요한, 예수 에 이르는 사도의 계보를 믿는 것이다.

 

가장 정확한 신의 개념

 

이슬람이 정의하는 가장 정확한 신의 개념은 성 꾸란 이클라스장(112)에 묘사되어 있다.

1. 말하라 하나님은 단 한 분이시고  

2.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3. 성부와 성자도 두지 않으셨으며

4. 그 분과 대등한 것 세상에 없노라 [성 꾸란 112:1-4]

 

‘앗싸마드’는 번역하기 힘든 단어다. 그 의미는 ‘영원하시고 홀로 충만하신 분’으로 알라의 속성을 나타낸다. 알라를 제외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일시적이고 한계를 지닌다. 알라는 어느 누구에게도 또 어떤 것에도 결코 의존하지 않으시다. 오히려 모든 사람과 존재하는 모든 것이 알라께 의존하고 있다.

 

이클라스장-이슬람 교리의 핵심

 

성 꾸란의 이클라스장(112)은 이슬람 교리의 핵심이다. 그리스어로 ‘Theo'는 신을 의미하며 'logy'는 연구를 뜻한다. Theology는 신에 대한 연구란 의미로 무슬림은 전능하신 신에 대한 개념을 앞서 언급한 이클라스장의 4구절로써 정의한다. 이는 신에 대한 연구의 핵심이다. 소위 신성을 가진다고 주장되는 존재들은 모두  4구절의 '엄격한 시험’를 통과해야 한다. 이클라스장에 주어진 알라의 속성은 유일무이하기 때문이다. 거짓 신은 이 시험을 통과할 수 없다.

 

이슬람은 ‘신인(神人)’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나?

 

인도라는 나라는 종종 ‘신인(神人)’의 땅이라고 불린다. 필시 영적 지도자의 수가 많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들 ‘바바’ 혹은 ‘성인’들은 여러 나라에 수많은 추종자들을 낳고 있다. 이슬람은 인간의 신격화에 대한 개념을 금한다.

 

신성을 주장하는 존재들에 대한 이슬람의 입장을 고찰하기에 앞서 오쇼 라지니쉬라는 소위 ‘신인’으로 숭배되는 인물에 대해 알아보자. 라지니쉬는 인도의 수많은 ‘영적 지도자’들 중 한 명으로 1981 5월 미국으로 건너가 라지니쉬푸람이라는 마을을 세웠으나 체포되어  추방당한다. 그 후 인도로 돌아와 푸네 지방에 공동 부락을 세웠는데 현재에도 ‘오쇼 공동 부락’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1990년 오쇼의 사망 이후에도 신도들은 그를 전능한 신이라 여겼다. 푸네 지방의 오쇼 공동 부락에 위치한 그의 무덤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겨져있다. ‘오쇼-결코 태어나지도 않으셨고 죽음을 맞이하지도 않으셔라. 단지 1931 12 11일 지구라는 행성을 처음 방문하여 1990 1 19일 지구를 떠나셨도다.

 

21개 국가들이 오쇼의 입국 비자 허가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그의 신도들은 잊고 있는가? 오쇼의 신도들은 신적 존재가 지구를 방문하여 여러 국가의 입국을 위해 비자를 신청해야 한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가? 과연 이 인물을 신이라 말할 수 있는지 이슬람 교리의 핵심인 이클라스장의 시험을 치르게 하자.

 

) 첫째, 말하라 하나님은 단 한 분이시고

라지니쉬는 유일한 존재인가? 그렇지 않다. 라지니쉬처럼 신성을 주장하는 사람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지니쉬의 신도들은 아직도 그가 유일한 존재라 믿고 있다.

) 둘째, 하나님은 영원하시며 라지니쉬는 1990년에 사망하였으므로 당연히 영원한 존재가 될 수 없다. 라지니쉬 전기를 읽어보면 그가 당뇨, 천식, 만성 요통에 시달렸음을 알 수 있다. 라지니쉬의 주장에 의하면 미국 정부는 투옥당한 그에게 독약을 주었다고 한다. 독살 당한 전능하신 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더 말할 필요 없이 라지니쉬는 영원하지도 홀로 충만한 존재도 아니다.     

) 셋째, 성자와 성부도 두지 않으셨으며

라지니쉬는 인도의 자발푸르 출신으로 그를 낳은 부모는 후에 신도가 되었다.

) 넷째, 그 분과 대등한 것 세상에 없노라

모습을 상상할 수 있거나 어떤 것에 비유할 수 있다면 그 대상은 더 이상 신이 아니다. 신의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지니쉬는 하얀 수염을 기른 인간으로 두 개의 눈과 귀, 한 개의 코와 입이 있으며, 그의 사진과 포스터도 구할 수 있다. 어떤 모습을 취하고 있는 신을 상상하는 순간부터 그 모습은 더 이상 신이라 불릴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우주의 신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의 모습으로 신의 형상을 그려내곤 한다. 앞서 행한 ‘엄격한 시험’을 치르게 한다면 진정한 신을 제외한 어떤  이도 이를 통과할 수 없다.

 

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무슬림은 신의 이름을 알라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한다. 아랍어 ‘알라’라는 단어는 순수하고 유일하며 영어의 God와 차별된다. 영어에서 신을 뜻하는 God s를 붙이면 여러 명의 신들이라는 뜻의 Gods로 변한다. 알라는 홀로 존재하시는 유일하신 분이시다. ‘알라’라는 단어는 복수형을 갖지 않는다. 영어의 God dess를 붙여 보자. Goddess는 여성 신을 뜻한다. 알라는 특정 성이 없으시다. 영어의 God 앞에 tin이라는 단어를 붙이면 tin-God 즉 가짜 신이라는 뜻이 된다. 알라는 유일하고 독특한 단어로 어떤 이미지를 야기할 수 없고 그 단어 자체에 무언가를 붙여 다른 의미를 지어낼 수도 없다. 무슬림들이 알라라는 이름을 선호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때로는 비무슬림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알라 대신 신(God)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한다. 본서의 일반적인 독자가 무슬림과 비무슬림 모두임을 감안할 때 필자는 여러 곳에서 알라라는 단어 대신 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신은 인간의 모습을 취하시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신이 전능하시므로 인간의 모습을 취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신이 원하신다면 인간이 되실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의 모습을 취한 순간부터 더 이상 신이 될 수 없다. 신의 속성과 인간의 속성은 결코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인 동형론 개념의 모순을 구체적으로 밝혀보자.

 

신은 불멸의 존재이나 인간은 죽음을 맞이한다. 신과 인간이 동시에 한 몸 안에 존재하는 신인(神人)은 없다. 신은 시작 없는 최초의 분이시나 인간은 세상에 모습을 보이는 순간부터 시작을 보인다. 시작도 없고 동시에 끝도 없는 인간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인간은 그 종말을 맞이하게 마련이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음식을 섭취하는 반면 신은 음식을 섭취하시지 않는다.

그 분께서는 일용할 양식이 필요치 아니함이라 [성 꾸란 6:14]

인간은 휴식 없이 일을 계속하지 못하나 신은 잠이나 휴식을 취하시지 않는다.

그 분은 살아계시사 영원하시며 모든 것을 주관하시도다 졸음도 잠도 그 분을 엄습하지 못하도다 천지의 모든 것이 그 분의 것이니[성 꾸란 2:255]

 

다른 인간을 숭배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신인 동형론이 모순이라면 같은 인간을 숭배하는 일 또한 부질없는 일이다. 신이 인간의 몸을 취하신다면 더 이상 신이 아니며 대신에 인간의 여러 가지 속성들을 갖게 된다. 예컨대 두뇌가 명석한 어떤 교수가 사고를 당해 모든 지식과 기억을 상실하게 되었다고 가정하자. 이 후에도 학생이 전과 같지 않은 그 교수에게 계속 강의를 받는다는 것은 우스운 상황이 된다.

 

신이 일단 인간의 몸을 취하신 후에는 다시 신이 될 수 없다. 인간은 신이 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으로 나타난 신을 숭배한다는 개념은 그 자체로 명백한 논리적 오류이다.

다음의 성 꾸란의 구절은 앞선 내용을 뒷받침한다.

그 분에 비유할 것 아무것도 없도다 [성 꾸란 42:11]

 

신은 죄악을 낳지 않으신다:

 

전능하신 신은 정의와 자비와 진실의 원천으로 신의 속성은 악을 금한다. 신은 죄악을 낳지 않으신다. 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부당한 일이나 실수를 하지 않으시며, 망각하지 않으시고 인간에게 나타나는 모든 결함으로부터 자유로우신 분이다. 신은 부정을 저지르지 않으신다. 부정이란 죄악이기 때문이다.

성 꾸란에 말씀하사:

하나님은 조금도 불공평하지 않으시니 [성 꾸란 4:40]

신이 원하신다면 부정을 저지를 수도 있으나 만약 그렇게 하신다면 더 이상 신의 존재가 되지 못한다.

 

신은 망각과 실수를 하지 않으신다:

 

신은 어떤 것도 잊지 않으신다. 망각이란 죄악이며 인간의 한계와 결점이기도 하다. 신은 또한 실수를 하지 않으시는 분으로 실수 또한 죄악이다.

나의 주님은 실수 하시거나 잊지 아니 하시노라 [성 꾸란 20:52]

 

신은 신성한 일을 주관하신다:

 

신은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 이슬람의 신에 대한 관념은 신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고 본다. 성 꾸란의 다음의 구절은 이를 지지한다.

하나님은 모든 일에 전지전능하심을 너희는 모르느뇨 [성 꾸란 2:106]

[성 꾸란 2:109]

[성 꾸란 2:284]

[성 꾸란 2: 284]

[성 꾸란 3:29]

[성 꾸란 16:77]

[성 꾸란 35:1]

다음의 성 꾸란의 구절을 보자.

뜻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시니라 [성 꾸란 85:16]

신은 오직 신성한 일을 행하시며 부정을 저지르지 않으신다는 점을 기억하자. 여러 종교에서 묘사되는 신은 직·간접적으로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있다. 그들은 전능하신 신이 너무나 순수하고 성스럽기 때문에 인간들이 겪는 어려움이나 인간적 약점, 인간의 감정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인간을 위한 법을 확립하기 위해 신이 직접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이 땅에 내려오셨다고 생각한다. 이런 식의 거짓 논리는 여러 세대에 걸쳐 수많은 영혼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창조주께서는 교훈 지침서를 준비하신다:

 

창조주께서는 인간에게 이성과 지능을 주시고 이로써 필요한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게 하셨다. 예컨대 공장에서 여러 개의 많은 녹음기를 생산하였다고 가정하자. 녹음기 자체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공장주가 직접 녹음기로 변신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공장주는 자신이 만든 제품에 대해 이미 완벽히 알고 있기 때문에 녹음기의 사용법 설명서만 만들면 된다. 제품의 사용법 설명서를 보면 녹음기를 잘 사용하는데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주의 사항을 알 수 있다.

 

인간이 만일 기계라면 알라께서 창조한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기계일 것이다. 주님이시며 창조주이신 알라께서 인간에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아시기 위해 직접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세상에 오실 필요는 없다. 신은 직접 창조하신 인간에 대해 이미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단순히 인간에게 필요한 교훈 지침서만 계시하시면 된다. 성 꾸란이 바로 인간을 위한 교훈 지침서다.

 

덧붙여 알라께서는 심판의 날 그의 피조물들을 모두 불러 각자의 행위를 계산하실 것이다. 여기에 바로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허락된 것’과 ‘금지된 것’을 알려주신 이유가 있다.

 

알라께서는 사도를 선택하신다:

 

알라께서는 교훈 지침서를 손으로 쓰시기 위해 직접 세상에 내려올 필요가 없으시다. 알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각 나라에 신의 메시지를 전할 사람을 선택하셨다. 그 선택 받은 사람을 사도나 선지자라고 부른다.

 

어떤 이들은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다’

 

신인 동형론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종교의 신도들은 신이 인간의 모습을 취할 수 있다고 믿으며 설교한다. 창조주의 의인화는 인간의 지성에도 그리고 그 지성을 주신 창조주에게도 커다란 모욕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알라께서 주신 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볼 수 없으며 귀가 있음에도 들을 수 없다. 성 꾸란의 구절을 인용한다.

귀머거리 벙어리 장님이 되어 돌아오지 못하노라 [성 꾸란 2:28]

성경의 마태복음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다.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마태복음 13:13]

힌두 경전 리그베다에도 비슷한 의미의 구절이 있다.말씀을 보고 있으나 실은 보지 못하며, 말씀을 듣고 있으나 실은 듣지 못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리그 베다 10:71:4]

 

진리를 분명히 제시하는 경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릇된 길을 가고 있다.

 

신의 속성:

 

가장 아름다운 이름은 알라에게 속한다:

 

성 꾸란의 다음 구절을 보자.

일러가로되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구원하라 너희가 무슨 이름으로 하나님을 부르던 하나님의 이름은 가장 아름다우니라[성 꾸란 17:110]

알라의 가장 아름다운 이름을 언급한 다른 구절이다.

아으라프장(7:180), 따하장(20:8), 하쉬르장(59:23-24)

 

꾸란은 전능하신 최고의 신 알라의 99가지 속성을 말한다. 꾸란에 알라는 아르-라흐만(가장 자애로우신 분), 아르-라힘(가장 자비로우신 분), 알 하킴(가장 지혜로우신 분)등으로 묘사되어 있다. 알라의 이름은 아름다워야 하며 어떤 형상을 연상시키지 않아야 한다.

 

신의 각 속성은 모두 유일한 것으로 오직 신만이 소유할 수 있다:

 

신의 속성들은 모두 유일할 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신의 존재를 잘 표현한다. 쉬운 명제로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의 예를 들어 보자.

 

닐 암스트롱이 미국인이다라는 명제가 있다. 미국인이라는 사실은 닐 암스트롱이 지닌 분명한 속성이지만 암스트롱을 정의하는데 충분한 전제 조건이 될 수 없다. 이번에는 닐 암스트롱은 우주 비행사다라는 명제를 보자. 우주 비행사라는 직업이 닐 암스트롱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만 가지고 있는 유일한 특성이 필요하다. 다음의 명제는 어떤가? 닐 암스트롱은 달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이다. 달에 처음 발을 디딘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누구든지 닐 암스트롱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신을 정의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우주의 창조주는 신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올바른 정의다. 만일 건물을 세우신 분이 신이다라고 한다면 한편으로는  참일 수도 있으나 신을 정의하는 유일한 참명제는 아니다. 많은 사람들도 역시 건물을 지을 수 있으므로 신과 인간을 정의하는데 차이를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알라의 속성이란 다른 것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오직 알라만이 소유하고 있는 속성이다.

예를 들어 보자.

 

‘아르-라힘’ 가장 자비로우신 분

‘아르-라흐만’ 가장 자애로우신 분

‘알-하킴’ 가장 지혜로우신 분

 

누군가 가장 자비로우신 분 ‘아르-라힘’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우리의 대답은 오직 하나 전능하신 알라라고 답한다.

 

신의 한 속성은 다른 속성들과 모순되지 않다:

 

다시 닐 암스트롱의 예로 돌아가자. 닐 암스트롱은 미국인 우주 비행사로 키는 4피트 밖에 되지 않는다라는 명제를 분석해 보자. 미국인 우주 비행사라는 속성은 분명 닐 암스트롱에게 해당되나 키가 4피트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정의는 거짓이다. 마찬가지로 신은 한 개의 머리, 두 손, 두 발을 가지고 있는 우주의 창조주다라는 명제에서도 우주의 창조주라는 속성은 참이지만 인간의 모습을 닮은 신의 묘사는 분명 거짓이다.

 

신을 정의하는 속성은 모두 유일하신 한 분의 같은 신을 나타내어야 한다:

 

오직 유일하신 한 분의 신만이 존재하시기 때문에 신을 정의하는 모든 속성 또한 유일하게 존재하시는 같은 신을 표현해야 한다. 창조주는 신이며 가장 자애로우신 분은 또 다른 어떤 신이다라는 명제는 모순이다. 오직 한 분의 신만이 존재하시기 때문이다.

 

신의 유일성:

 

다신교도는 다수의 신의 존재가 논리적으로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만일 여러 명의 신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서로 논쟁을 할 것이다. 각 신들은 자기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다른 신과 싸우게 될 것이다. 비단 다신교의 종교적 신화에서 흔히 보이는 이야기다. 만일 어떤 신이 패배하거나 다른 신을 압도할 수 없다면 그 신은 더 이상 진정한 신이 될 수 없다. 다신교에서 각기 다른 임무를 수행하는 여러 신들의 이야기는 유명하다. 각 신은 인간 존재에 필요한 다양한 것들을 책임진다. 태양신과 우신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어떤 신은 자기 임무 밖의 일에 무능하며 다른 신의 의무와 책임에 대해서 무지하다. 그러나 과연 무능하고 무지한 신은 존재할 수 있는가? 여러 신이 존재한다면 세상은 혼란과 무질서, 혼돈과 파괴가 야기될 것이다. 그러나 우주는 완벽한 조화 속에 존재한다. 성 꾸란의 구절을 인용한다:

만일 그 안에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이 있었다면 그들은 붕괴하였으리라 옥좌의 주님이신 하나님 그리고 그들의 묘사하는 것 위에 높이 계신 하나님만을 찬미하라[성 꾸란 21:22]

만일 다수의 신들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서로 피조물을 가지려 싸웠을 것이다. 다음의 성 꾸란 구절을 보자.

하나님은 자식을 두지 아니하셨으며 그 분을 대적할 어떠한 신도 없노라 만일 다른 많은 신들이 있었다면 각 신들은 자기가 창조한 것을 빼앗아 갔을 것이며 다른 신을 지배했으리라 하나님이여 그들의 묘사하는 것을 초월하여 홀로 영광받으소서[성 꾸란 23:91]

 

오직 한 분의 최고의 전능하신 신만이 존재한다는 개념이 신에 대한 가장 올바른 논리적 개념이다.

불교와 유교와 같은 불가지론적 종교는 신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으며 확증하지도 부인하지도 않는다. 자이나교와 같은 종교는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무신론을 따른다.

 

 

종교는 궁극적으로 유일신주의에 귀결된다.

 

신의 존재를 믿는 주요 종교는 결국 유일한 최고신의 존재를 믿는다. 실제로 이들 종교 성서들이 모두 유일하신 한 분의 진정한 신의 존재를 확증하고 있다.

 

이익을 위해 성서를 고치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대부분의 종교 경전은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수정되고 왜곡되었으며 유일신주의에서 다신주의로 변질되었다

 

성 꾸란의 말씀을 보자:

 

그들 손으로 그 성서를 써서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니 값싸게 사소서 라고 말하는 그들에게 재앙이 있을 것이며 그것을 쓴 그들의 손에도 재앙이 올 것이며 그로써 금전을 모으는 자들에게 재앙이 있을 것이라[성 꾸란 2:70]

 

 

타우히드

 

정의와 분류:

 

이슬람의 타우히드는 단순히 한 분의 신의 존재를 믿는 유일신주의 그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타우히드의 자구적 의미는 통일성을 뜻하며 통일하다라는 뜻의 동사 ‘와흐하다’에서 파생되었다. 타우히드는 다음의 세 가지로 분류된다.

 

a. 타우히드 아르-루부비야

b. 타우히드 알-아스마-와스-시파트

c. 타우히드 알-이바다

 

a. 타우히드 아르-루부비야 (주님의 유일성을 유지하는 것)

 

타우히드 아르-루부비야에서 루부비야란 주님, 양식을 주시는 분을 의미하는 ‘랍’에서 파생되었다. 따라서 타우히드-아르-루부비야는 신의 유일성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알라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을 때에도 홀로 존재하셨으며 무()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전 우주와 그 안의 모든 것을 홀로 창조하시고 양식을 주시며 피조물로부터 어떤 필요도 구하지 않으시는 유일하신 분이 바로 알라다.

 

b. 타우히드 알-아스마 와스-시파트 (알라의 이름과 속성의 유일성을 유지하는 것)

 

타우히드 알-아스마 와스-시파트란 알라의 이름과 속성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며 다음의 5가지 개념으로 분류된다.

 

() 알라의 이름은 알라와 선지자께서 가르쳐 주신 형식으로 불려야 한다. 알라와 사도께서는 알라의 이름과 속성에 모호하지 않는 분명한 의미를 부여하셨다.

() 알라께서 부르시는 형식으로 알라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어떤 새로운 이름과 속성으로 알라를 부를 수 없다. 예를 들어 알-가디브 (화나신 분)라고 부를 수 없다. 알라는 화를 내실 수 있지만 알라와 사도께서는 이런 이름을 사용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 피조물의 속성을 갖는 이름으로 알라를 부르지 않아야 한다. 신의 피조물의 속성으로 신의 이름을 부를 수 없다. 기독교의 성경은 신이 잘못을 뉘우친다고 묘사한다. 마치 인간이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하는 것과 같다. 타우히드 원칙에 엄격히 위배되는 바다. 신은 회개하지 않으시며 실수나 잘못이 없으시다.

성 꾸란 슈아라장에 계시된 알라의 속성의 핵심이 되는 원칙은 다음과 같다:

실로 그 분은 들으심과 아심으로 충만하심이라

시각과 청각은 인간이 속성이다. 그러나 신에게 관련지어 언급할 때는 한계가 있는 인간의 시각과 청각이 아닌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완벽한 청각과 시각을 의미한다.

() 신의 속성으로 인간의 이름을 부르지 않아야 한다. 어떤 사람의 이름을 시작도 끝도 없는 분이라고 부르면 타우히드 원칙에 위배된다.

() 알라의 이름으로 그 분의 피조물을 부를 수 없다. 단 인간의 이름으로 라우프나 라힘 처럼 특정 한계를 표현하지 않는 이름으로 인간의 이름을 짓는 것은 허용된다. 알라께서 선지자의 이름을 그렇게 부르셨기 때문이다. 단 아르-라우프(가장 경건하신 분)나 아르-라힘(가장 자비로우신) 같은 이름은 ~의 종이라는 뜻의 접두사 압드(abd)를 붙혀 압두르 라우프 혹은 압두르 라힘과 같은 형식으로 사용해야 한다.

 

c. 타우히드 알-이바다(숭배의 유일성을 유지하는 것)

 

() 이바다의 정의: 타우히드 알-이바다란 숭배의 유일성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바다란 아랍어로 종을 의미하는 압드(abd)에서 파생된 단어로 노예상태 혹은 숭배를 뜻한다. 예배는 숭배의 최고 형태다. 그러나 예배만이 숭배의 유일한 방식은 아니다. 보통 전능하신 신을 숭배한다는 것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나 이슬람에서 숭배의 개념은 완벽한 순종과 복종에 있다. 숭배(이바다)란 신의 말씀을 준수하고 금지된 것을 멀리하는 것이며 모든 숭배는 알라 홀로 받으신다.

() 타우히드의 세 가지 원칙은 모두 중요하다. 앞선 두 가지의 원칙만 중요시하고 세 번째의 타우히드--이바다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우상 숭배자(무쉬리낀)의 부류에 속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음의 인용된 성 꾸란의 구절을 보자.

일러가로되 하늘과 대지에서 누가 너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느뇨 또한 듣게 하고 보게 하심은 누구이뇨 죽은 자를 살게 한 자는 누구이뇨 누가 산 자를 죽게 하느뇨 누가 일들을 주관하느뇨 하나님이요 라고 하더라 그때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왜 그 분을 두려워하지 않느뇨 [성 꾸란 10:31]

비슷한 계시가 성 꾸란의 주크루프장에 있다.

그들을 창조한 분이 누구이뇨 묻는다면 하나님이라고 그들은 말하니라 그러면서도 그들은 진리로부터 외면하려 하느뇨 [성 꾸란 43:87]

메카의 이교도들은 창조주이자 양식을 주시는 분이 알라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알라 외 다른 여러 신을 숭배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알라는 다른 것을 숭배하는 자를 꾸파르(불신자들)와 무쉬리낀(우상숭배자로 알라의 동반자를 지어내는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니 그들은 불신자들이 아니더뇨 [성 꾸란 12:106]

숭배의 유일성을 지키는 타우히드 알-이바다는 타우히드 개념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알라만이 홀로 숭배 받아야 하며 알라만이 숭배하는 인간에게 은혜를 더하여 주실 수 있다.

 

쉬르크

 

a. 정의:

 

타우히드를 완성하는데 중요한 개념이 바로 ‘쉬르크’이다. 쉬르크의 자구적 의미는 동반자를 두는 것이다. 이슬람에서 정의하는 쉬르크란 알라에게 동반자를 두는 것으로 우상숭배와 같은 것이다.

 

b. 알라께서 절대 용서하지 않으시는 가장 큰 죄는 쉬르크다.

성 꾸란의 니싸아장에 가장 큰 죄에 대한 계시가 있다.

실로 하나님은 그 분에 비유하려 한 자를 용서치 아니하며 그 외에는 그 분의 뜻에 따라 용서를 베푸시나 하나님에 비유하려 하는 자를 죄를 조성하는 것이라 [성 꾸란 4:48]

같은 의미의 다른 구절을 보자.

실로 하나님은 그 분에 비유하는 자를 용서하지 아니하시니라 그러나 그 외에는 원하는 자마다 용서를 하시나 하나님에 비유하는 자는 멀리서 방황하니라 [성 꾸란 4:116]

 

c. 쉬르크의 죄를 저지르면 불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성 꾸란 마이다 장에 말씀이 계셨으니:

하나님이 마리아 아들을 메시아라 말하니 그들은 분명 불신자들이라 메시아 가로되 이스라엘 자손들이여 나의 주님이고 너희의 주님인 하나님만 경배하라 하나님을 불신하는 자 하나님께서 그들에의 천국을 금하시고 불지옥을 그의 거주지로 하게 하니 죄인들에게는 구원자가 없노라 [성 꾸란 5:72]

 

d. 오직 알라만을 위한 숭배와 순종:

성 꾸란 이므란장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성서의 백성들이여 우리들이나 너희들을 막론하고 하나의 말씀으로 오라하여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 무엇도 하나님과 비유하지 아니하며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주님과 비교하지 말라 이르되 만일 그들이 배반한다면 실로 우리는 하나님의 유일성을 믿는 무슬림임을 지켜보라 말하라 [성 꾸란 3:64]

 

 

결론

 

다음의 성 꾸란의 말씀을 보자:

 

그러하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숭배하는 그것들을 험담하지 말라 이는 그들이 그들의 무지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아니하도록 하고자 함이라 [성 꾸란 6:108]

 

지상에 있는 모든 수목이 연필이 되고 일곱 개의 바다를 더하여 물로 가득 찬 바다가 잉크가 된다 하더라도 하나님 말씀 모두를 기록할 수 없나니 실로 하나님은 권능과 지혜로 충만하심이라 [성 꾸란 31:27]

 

사람들이여 하나의 비유를 드사 그것에 귀를 기울이라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 구원하는 자들은 그들이 온 힘을 다 모은다 해도 결코 파리 한 마리조차 창조하지 못하며 그 파리가 그들로부터 무엇인가를 가져간다 해도 그들은 그것으로부터 그것을 구하지 못하니 숭배자가 우상은 허약할 뿐이라 [성 꾸란 22:73]

 

만유의 주님이시고 창조주이시며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알라께 모든 찬미를 드립니다.

 

 

 참고문헌

 

성 꾸란 의미의 한국어 번역 : 파하드 국왕 꾸란 출판청 최영길 박사

 

BIG 베스트 성경 : 성서원 편찬대표 이종성 박사

 

 

 

저자       : 자키르 나잌 박사

발행처    : 아담 출판사

주소       :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137-46

전화       : (02) 794-0968

이메일    : booksadam@yaho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