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도 아브라함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프티 학압두 박사(Dr. Abdul Wahab Zahid Haq)
한국이슬람 선교사

서 론

온 우주의 주인이신 알라께 찬미를 드리며 알라외에는 신이 없고 무함마드(그분께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는 알라의 종이며 알라의 최후의 사도임을 증언한다. 그분의 올바른 백성들과 무함마드(그분께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 사도의 교우들과 최후의 심판일 때까지 선행으로 따르는 자손들에 알라께서 만족해하신다.
모든 사도와 예언자들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생애를 연구하고 아는 것은 인간이 인식해야 할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그분의 생애에 대하여 무지한 것은 그분과 그분의 자손들이 선교를 했던 유일하신 알라의 교리에 대하여 무지한 것이다. 아브라함의 생애는 여느 인간들의 생애와는 다르다. 영웅이나 지도자의 이야기가 아닌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아버지인 이야기이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읽으면서 우리는 유일신의 올바른 교리를 알 수 있고 그 교리로 인하여 자신의 생애에 있어서 종교적 성공을 이룰 수 있다. 그의 생애는 매 순간마다 유일신 알라, 유일하신 주님이며 오로지 그분께만 경배하는 다와(선교)를 잊지 않았다. 알라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는 알라께 헌신하는 사람이었다.) 그에 관해 모든 것을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의 신앙심을 돈독히 하는 것이며 그 당시의 잘못들을 교훈으로 삼아 우리는 더욱 경각심을 갖고 살 수 있다. 이것은 우리가 현세에서 살면서 우리에게 유익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아브라함의 생애에 관하여 여기서 간단하게 정리하여 알리고자 한다. 그리고 유일하신 알라의 교리와 관계없는 중요하지 않는 점들에 대해서는 이곳에서 생략하였다.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유일신 알라의 교리이며 그것에 대한 믿음을 어떠한 의심도 없이 명확한 증거로 나타난다. 나는 무슬림이며 유일신 알라에 대해서 우리에게 온 모든 것들을 조건 없이 믿으며 알라를 믿고 그분의 경전들과 그분의 사도들을 믿는다. 나는 인간의 실체와 알라에 대한 신앙과의 관계를 기술하고자 하며 신앙생활에 실패하여 내세의 삶을 망치는 진실에 무지한 자들과 그 반대로 알라께서 피조물에게 정해준 삶에 따라 살아가는 평화로운 자들에 대하여서도 기술하고자 한다. 현세에서의 돈과 자식 등 그 어떤 것도 그의 내세 삶에 유익하지 않으며 단지 마음으로 알라를 받아들일 것임을 인식하고 알라께 구원은 요청하고 나와 무슬림들을 위하여 자비를 구하며 부모님과 다른 모든 선한 사람들을 위하여 자비와 구원을 요청한다. 
그것이 이 책을 펴내는 목적이며 마지막으로 온 우주의 주님이신 알라께 찬미를 드리나이다. 
무프티 학압두 박사(Dr. Abdul Wahab Zahid Haq)
한국이슬람 선교사
1997년 2월 16일/1417년 9월 7일 


사도들의 파견으로부터의 교훈

유일신 알라를 믿는 것은 신에 대한 인간의 신앙적 본능이다. 그것의 부재는 하나님에 대한 진실된 믿음의 부재이다. 그것은 다신과 불신에 머무르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들은 오랫동안 다음의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해서 살아왔다.
1. 선지자와 사도들이 이끌었던 신앙의 방법과 길
2.사탄이 앞을 이끌었던 불신자와 우상 숭배자들의 방법과 길 

인간은 이 두 길의 갈림길에서 그의 순수한 의지와 선택에 의해 두 길 가운데 그가 원하는 길을 가고, 이러한 선택에 따라 그의 운명은 이루어지고 그의 영원성의 결과가 나타난다. 
이슬람 신앙 연구에서 밝혔듯이 하나님은 이슬람 신앙의 기둥 중 하나인 모든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그들 중의 어느 한 분도 차이나 구별 없이 믿게 하였다. 하나님께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말하라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우리에게 계시된 것과 아브라함과 이스마일, 이삭, 야곱 그리고 그 자손들에게 계시된 것과 모세와 예수가 계시 받은 것과 선지자들이 그들의 주님으로부터 계시 받은 것을 믿나이다 우리는 그들 어느 누구도 구별치 아니하며 오직 그분에게만 순종할 따름입니다” (바까라장 136절)
무슬림들은 모든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그들 중의 어느 한 사람 사이의 구별 없이 그리고 의심 없이 믿는다. 그것은 바로 유일신 하나님을 믿는 한 부분이다.
가슴과 혀가 일치되고 겉과 속이 일치될 때 그 믿음은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믿음이며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혀로서 주님께서 내려 주신 모든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그분이 행한 것 외에는 말하지 않으며, 그분이 말한 것 외에는 행하지 않게 된다. 그럼으로써 그가 원한 것이나 바라는 것 또는 그가 원하는 바를 혀로서 요구한 것 등이 이루어지게 된다.
무슬림은 사실 영원의 집과 영생으로 가고 있으며 그들은 이미 정해진 덧없는 삶을 위해 창조되지 않았다고 확고하게 믿고 있으며 자신들의 존재는 거대하고 고귀한 목적을 위해서 있다고 믿고 있다. 그 목적은 바로 경의와 신성으로서 하느님의 유일성을 예증하는 것이며 절대적 복종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존재와 창조의 근본적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진과 인간을 창조함은 그들이 나를 경배함에 있으며 내가 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지 아니하며 또한 그들이 나를 부양하길 원치 않느니라”(자리야트장 56-57절)
하나님은 인간을 그에게 경배시키기 위해 창조하셨고 유일신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고 복종하는 일을 인간에게 맡기셨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쪽으로 향한다면, 그는 진실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이 내려 주신 완전한 본능에 반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 사도인 무함마드(그에게 평화가 깃드소서)는 하디스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믿음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 아이는 없다. 그래서 아이의 부모는 그를 유대교를 믿게 하거나 기독교를 믿게 한다.” (부카리)
믿음의 본성은 분리될 수 없는 인간의 영혼 속에 존재하는 믿음의 본질이며 삶 전체에 함께 하는 것이다. 삶의 과정에 믿음의 본성이 분리 되어지는 것은 그가 성장하는 사회와 환경의 결과이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본성이 여전히 삶의 자취 속에 남아 있게 되며 인간의 내부 속에서 이러한 것을 느끼고 감지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에서, 또한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모든 것을 볼 때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를 느끼게 된다. 이러한 믿음의 본성은 아담이 땅 위에 내려오기 전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취한 약속이자 협정이었다. 하나님은 아담의 갈비뼈로부터 자손을 일으켜 그들 모두를 모아 놓으시고 그들에게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이 그들의 주님임을 증거하셨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을 (후손의 세계)라고 부르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주님께서 아담의 후손들을 일으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증언케 하신 말씀이 계셨으니 내가 너희 주님이 아니란 말이냐 하시니 그렇지 아니 하옵니다. 저희는 주님이심을 증언하나이다 라고 그들이 대답 하니라 이는 너희가 심판의 날 우리는 이에 관하여 알지 못하였습니다 라고 말하지 아니하도록 함이라. 또는 실로 저희 이전 선조들이 우상을 섬겨 숭배하였을지도 모르나 저희는 그들의 후손에 불과함일 뿐이오 그런데 무익한 사람들이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저희를 멸망하려 하심이요 라고 너희가 말하지 않도록 함이라” (아으라프장 172~173절)
인간의 존재와, 하나님이 약속한 믿음의 본성과, 삶의 깊은 곳에서 느끼는 모든 것은 이러한 사실로부터 온 것이며, 이러한 약속과 성약으로부터 하나님은 심판의 날에 인간을 판단하신다. 또한 인간에게 가지도록 한 믿음의 본성은 하나님의 유일성을 갖도록 해준다. 그래서 만일 약속을 준수하고 성약의 권리를 행하며 유일신 하나님을 경배하며 그의 가르침을 따르면 인간은 그것으로 발전과 행복과 완전한 인간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만일 인간이 믿음의 본성을 버리고 약속과 성약을 깨뜨리고 자기 마음속에 사탄에 대한 들어오는 문을 열어 둔다면 그것이 사탄이 인간의 마음과 이성과 영혼을 지배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에 인간은 그 자신을 잘못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삶은 현세의 삶에 있어 배부름과 편안함 이외에는 어떠한 목적도 가지고 있지 않은 동물의 삶과 유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으로 그의 삶은 재산도 자식도 소용없는 심판의 날에 유용함을 주는 선한 행위와 착한 일을 하지도 않은 채 끝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너희를 장난으로 창조하였다 생각하였느냐 실로 너희는 하나님에게로 귀의하느니라” (무으민장 115절)
“아무 목적 없이 방황하도록 내버려두리라 인간은 생각하느냐”(끼야마장 36절)
하나님께서 재능과 특징들을 인간에게 내림으로 존재를 있게 하신 데에는 반드시 이유와 목적이 있다. 그렇다면 존재이유는 무엇이며 존재하고 창조된 목적은 무엇인가?
만일 인간이 존재의 이유를 무시하고, 인간의 대적인 사탄의 지배를 받게 되고, 하나님의 가르침을 망각한다면 그 삶은 바로 목적과 이유가 없는 삶이며 살아 있는 다른 창조물들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즉 먹고, 마시고, 잠자고 죽음으로 그의 삶을 끝마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 우리 주위에 있는 것들을 돌아본다면,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 자신이 아닌 것들에 봉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물은 자기가 아닌 다른 삶에 봉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물로부터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만들었다”
물은 땅과 식물과 동물과 인간에 봉사하며 땅은 자신의 특성으로 양분을 공급하여 식물을 자라게 하며, 식물은 자신을 동물과 인간의 음식으로 제공하며, 동물은 인간을 위해 이용된다. 따라서 이 세상에 있는 무생물이든 식물이든 모든 것들은 인간에 봉사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떠한 것에 봉사함 없이 존재할까?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각각의 임무가 있다. 그러면 인간의 임무는 무엇인가? 존재하는 것 가운데 가장 뛰어난 인간이 이유나 목적 없이 존재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러한 인간이 그를 창조하고 그를 위해 봉사를 아끼지 않은 분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이 가능할까? 인간이 창조된 것들을 경배하는 것이 허용되는 것일까?
우주의 하늘에 있는 모든 것들과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것들의 소유자이신 하나님의 통제와 조절 하에 있다. 따라서 이성과 완전한 논리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 이성을 소유한 인간이 그 자신처럼 창조된 것에게나 이성을 가지지 않은 것들에 복종하거나, 경배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
아브라함(그분께 평화가)께서 이 부분에 대하여 명확하게 지적하셨다. 아브라함이 그의 민족에게 말하기를 : 당신들이 사로 잡혀 있는 이 우상들은 무엇이냐 
올바른 교리를 거부하고 왜곡시킨 자들이 말하기를 : 우리 조상들께서도 그렇게 하는 것을 우리가 보았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 그대들과 그대들의 조상들은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별들 즉 태양, 달, 별들 그리고 땅 위와 바다 속에 있는 것. 바위, 나무, 동물 또는 다른 인간들에게 경배의 절을 하는 인간들은 아둔한 자들이다. 사탄이 인간의 마음속에 스며들어 보잘것없는 물질적인 욕망과 상상을 자극하고 유혹하며 알라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도록 조종을 한다. 그의 목적은 신앙적 본능을 바꾸기 위한 목적으로 알라의 올바른 교리를 점진적으로 왜곡시키기 위한 것이다. 아담(그분께 평화가) 이후의 초창기 사람들은 선지자들의 사후에 그들을 신성시하였다. 사탄은 점진적으로 그들을 우상화시키고 우상을 만들고 염원을 하며 신격화하도록 조종했다. 그 후 그 우상들을 향하여 경배하도록 했으며 알라의 유일성을 망각하도록 했다. 이러한 것이 바로 사탄이 인간들 마음 속에서 우상숭배 하도록 한 일이다. 이것이 여러 민족으로 퍼져 나가 욕망과 현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그들의 지도자들과 왕들은 다신교를 택했으며 우상 숭배를 하였다. 그리고 철학자들에 의해 종교가 정리되기 시작하면서 진실이 왜곡 되어지고 교리가 변질되어 갔다. 
아브라함(그분께 평화가)께서는 이라크의 바빌론시대 그 곳 백성들이 알라 이외의 다른 신을 경배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철학과 교리를 믿는 것을 걱정하였다. 다음의 꾸란 구절에서 알라께서 경고하신 것처럼 사탄은 인간의 흉악한 적이다.
“아담의 자손들이여 내가 너희에게 일러 사탄을 숭배하지 말라 그는 너희들의 분명한 적이라 그러므로 나만을 경배하라 그것이 옳은 길이니라 하지 아니했느뇨 그러나 그(사탄)는 너희 가운데 많은 무리를 방황토록 했으니 너희는 이해하지 못했느뇨” (야씬장 60절~62절)
그러나 자비로우신 알라께서는 그분의 사도들과 예언자들을 통하여 경고하고 주지시켰다. 알라께서는 인간들 중 사도와 예언자들을 선택했고 그들을 통해 [지고하신 알라만을 경배하는 것을 거부하는 자들에게]알라를 상기시켜 주도록 하였다.
누구든지 유일하신 알라만을 경배하는 자는 알라의 보호와 축복과 도움하에 천국에 들어갈 것이고 평온을 얻을 것이며 그의 적인 인간과 진의 사탄을 물리치고 삶의 만족을 얻는다. 
알라께서는 모든 피조물에게 축복을 주시는 분이시며 그분께서는 피조물들로부터 아무것도 필요치 않는 분이시며 오히려 알라의 피조물들이 알라를 필요로 한다.
알라께서는 인간을 통해 무지함에서 지성을 얻기 위해, 부족함에서 풍족함을 얻기 위해 능력 없고 불가능한 것을 할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해 그리고 어떤 유익함을 얻고 해로운 것을 막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진실로 알라께서는 인간들이 그분만을 영원히 경배하고 그 분께만 염원하도록 하기 위하여 인간들을 창조하셨다. 
만약 어느 누구라도 주님에 대하여 등한시한다면 그는 물질적인 그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 심판의 날 고통이 그의 몫이 될 것이다. 알라께서 꾸란에서 말씀하셨다. 
“너희를 장난으로 창조하였다고 생각하느뇨 실로 너희는 우리(하나님)에게로 귀의하느니라”(무으민장 115절)
알라께 향한 우리의 귀의는 당연한 일이며 하나님의 말씀인 다음의 꾸란 구절에서 명확히 한다.
“믿는 사람들이여!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내일을 위해 스스로가 무엇을 했는지 각자가 숙고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실로 하나님은 너희가 행하는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시니라 그리하되 하나님을 망각한 자처럼 되지 말라 그리하면 그분(하나님)은 그들의 영혼을 그들로 하여금 망각케 하셨나니 그들이야말로 죄인들이라” (하쉬르장 18절 ~19절)
상기의 꾸란 구절은 우리들이 알라에 대한 무지와 유일신 알라의 권리를 망각하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진실로 우리들에 대한 알라의 권리를 잊는 것은 부정한 일이며 모든 사람들이 꼭 알고 기억해야 한다. 결코 후회나 뒤로 미루는 것은 심판일 날 도움이 되지 않으며 다음의 꾸란 구절에서 인간들에 대한 창조주의 권리를 잊지 않도록 말한다.
“그때 모든 영혼은 그가 행한 것들을 알게 되니라” (타크위르장 14절)
모든 인간들은 최후의 심판의 날 자신들의 행위의 심판을 받고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결코 더하거나 덜하지 않은 그 자신이 행한 그대로의 결과이며 그들이 행한 것은 모두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올바르고 충실한 삶을 살았는지 또는 그렇지 않았는지 물질적 욕구를 절제하고 알라의 길에 충실했는지 등이다. 알라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날 사람들은 여기저기 무덤에서 떼지어 나와 그들의 업적들을 보이니라 띠끌만한 선행이라도 실천 한자는 그것이 복이 됨을 볼 것이며 띠끌만한 악행이라도 저지른 자는 악이 됨을 알리라”(질잘장 7절-8절)
천지간을 통해 알라께서 모르시는 것이 없으며 감추어질 수 있는 것이 없다. 최후의 심판의 날 결코 부정이나 잊혀진 것 없이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이다. 최후의 심판일은 바로 상벌에 대한 계산이 명확한 날이며 모든 심판을 알라께서 행하신다.
현세 모든 것들은 부질없는 것이며 오로지 지고하신 알라를 향한 생활만이 남는 것이다. 알라께서는 심판자이시며 절대적 군주이시다.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은 현세를 살면서 창조주 알라를 향하여 경배 드리고 감사하는 것이며 진정으로 알라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알라를 향한 우리의 의무와 알라의 권리를 아는 것이다. 이것은 오로지 올바른 지혜의 인도로 정립될 수 있는 것이다.
알라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칠천을 창조하사 대지도 그와 같이 창조하신 분이시라 그사이를 통하여 그분(하나님)의 계시가 계속되었나니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모든 것이 그분의 지혜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알도록 함이라” (딸라끄장 12절)
알라를 인식하고 알라의 종들에 대한 알라의 권리를 올바르게 아는 것이 바로 지고하신 알라를 경배하는 근본중의 하나인 것이다. 올바른 인식을 위해서는 올바른 인도와 가르침을 받아야 하며, 알라께서는 인간들 중 정직하고 올바른 자들을 통해 가르침을 내리셨다. 
그들에게 경전을 보내셔서 글로 써서 책을 만들어 알라의 가르침과 명령들을 전파하도록 하셨다
알라께서는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셔서 알라의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계시를 통하여 경전을 보내셨고 그 경전이 삶의 가르침이고 질서이고 지침서이다. 알라께서는 주저함과 두려움과 의심 없이 믿음으로 그분의 경전을 따르도록 명령하셨으며 바로 그것이 알라의 말씀이다. 그리고 알라께서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이 알라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자로서 올바르게 인도하는 안내자로서 그들의 위치를 모든 인간들이 믿도록 하였다. 그들을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천국에서 영원한 보상을 해주며 그들을 거부하고 비방하는 자들에게는 지옥의 불이 기다린다.
우리에게는 알라의 대리인으로서 알라를 알게 하고 알라께 경배하는 길로 인도하고 이끌어준 이들의 생애를 알 필요가 있다. 
알라께서 내려 보내셨던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숫자는 정해져 있지 않으며 오직 지고하신 알라만이 알고 계실 뿐이다. 그들은 아담(그분께 평화)의 자손들로 알라께서 선택하셨던 인간들이다. 그러면 그들의 임무는 무엇인가?
그것은 유일하신 알라만을 믿고 우리를 창조하신 분께 염원하고 우리들 마음속에 알라와의 약속을 명심하고 알라만을 주님이고 유일하신 신이며 오로지 그분만이 경배를 받으실 수 있는 분임을 알리고 깨우치게 하는 것이다. 사도들과 예언자들 사이에 임무에 있어서 어떤 차이나 상이점도 없다. 그들 모두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창조주에게로 인간들을 귀의시키는 유일하신 알라의 사도들이다. 그들 각각이 다른 이들을 서로 보완해주며 그들 모두가 하나의 교리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 알라께서는 예언자들과 선지자들을 사도 무함마드(그분께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의 계시로 완성 시키셨으며 알라의 종교를 이슬람으로 완성시키셨다. 그리고 아담 이후 모든 사도들과 예언자들을 최후의 사도인 무함마드((그분께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께 귀결된다. 그리고 알라께서 그들을 꾸란에 언급하셨고 그들 모두를 믿는 것을 의무로 정하셨다. 무슬림들은 알라의 모든 사도들과 예언자들을 믿는다. 그분들을 존경하고 그분들 사이에 어떠한 구별도 두지 않으며 누구든지 그분들을 불신하거나 매도하거나 비방하는 자는 무슬림이 아니며 최후의 예언자이신 무함마드(그분께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께 계시된 것을 믿지 않는 자이다.
알라께서 말씀하셨다.
“하나님과 선지자들을 불신하며 하나님과 선지자들을 이간시키려 하는 자들이 우리는 일부를 믿고 일부는 부정하나이다 라고 말하며 그들은 그 중간의 길을 택하겠다 원하더라 실로 이들이야말로 불신자들이거늘” (니싸아장 150절-151절)
알라께서는 그의 사도들과 예언자들에 대해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시며 그들의 이름과 그 수에 대해서도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시다. 알라께서 그들에 대하여 언급하신 사도들과 예언자들 중 몇몇 분들의 이름을 예로서 알려주셨다
그들 중 아브라함(그분께 평화가) 이전의 사도와 예언자들은 아담, 이드리스, 노아 후드, 롯 등(그분들께 평화가)이며 롯(그분께 평화가)은 아브라함(그분께 평화가)과 동시대의 사람으로 두사람은 많은 여행을 하였다. 
아브라함(그분께 평화가)이후의 사도들은 그의 자손들 이스마일, 이삭, 야곱, 모세, 다윗, 솔로몬, 예수, 그리고 최후의 사도이자 예언자이신 무함마드 븐 압둘라(그분들 모두에게 평화가)이시다.

아브라함(그분께 평화가) 

지고하신 알라께서는 아브라함을(그분께 평화가) 종족들과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그(알라)의 사도와 예언자로 선택하셨다. 그는 바로 이후에 오는 모든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아버지이다. 그의 자손 중 알라의 최후의 사도이자 예언자이는 무함마드(그분께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이다. 아브라함(그분께 평화가)의 자손들은 부족과 민족을 이루어 지혜와 지식으로 생을 채웠으며, 국가를 이루고 지도하였으며, 정의와 자비 그리고 도덕을 널리 퍼트려 이롭게 하였다. 그들이 아랍인의 시조가 되거나 이스라엘의 시조가 되었다. 
알라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분명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모범이었으니 그는 우상을 섬기는 이들 가운데 있게 하였느니라”(나흘장 120절)
아브라함의 전도 생활에서 진실된 사도로 복음의 전파 즉 유일하신 알라에 대한 신앙심과 최후의 심판일의 믿음과 부활과 선과 악에 대한 명확한 상벌 등을 행했다. 지고하신 알라의 유일성을 부정하고 무지한 불신을 종식시켰다.

아브라함의 출생(그분께 평화가) 

아브라함께서는 이라크의 아와르라는 지방에서 태어나셨다. 아와르는 지리적으로 이라크의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의 서쪽 즉 시리아와 가까이 있다. 아와르 지방은 비옥하고 문물이 풍족한 땅으로 알려져 있다. 그곳에서 태어난 아브라함은 그의 부친과 같이 시리아 국경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 사이의 하란이란 도시 옆으로 이주를 하였으며 그곳에서 175년을 살았다. 아브라함이 (그분께 평화가) 부름을 받고 일을 했던 시기는 기원전 1861년부터 기원전 1668년까지이다. 
그의 아버지 이름은 타리흐 또는 꾸란 귀절에서 말하듯이 아지르라고 한다. 또 두가지 이름 다(타리흐, 아지르)일수 있다. 또는 아지르가 아브라함 아버지의 형제의 이름이라고 하기도 한다. 아브라함의 민족은 아버지의 형제를 아버지와 동일한 위치로 여겼기 때문에 타리흐가 아브라함의 아버지 이름이고 꾸란에서 언급한 아지르는 그의 삼촌 일 수도 있다는 설도 있지만 여기서 정설은 아지르가 아브라함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고 타리흐는 그의 삼촌이다. 다음처럼 꾸란은 명확히 그의 족보를 말하였다.
“그의 아버지 아지르에게 말하기를”
이것으로 두 가지 이름을 놓고 논쟁할 부분이 없음을 주장한다.
쉐이크 똬바리가 언급하기를 : 아브라함은 바빌로니아에서 태어났다. 쉐이크 야꾸트 알 하마디가 언급하기를 : 바빌로니아는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가까운 곳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 사이에 위치한다. 그곳은 바로 검은 땅으로 불리는 곳이다. 아브라함의 출생은 나마루드 븐 칸안 븐 카우시왕 통치 시절이며 (B.C1900-B.C1700) 아브라함이 살았던 그 당시의 바빌로니아는 이라크를 통치하고 있었으며 문명이 발달했었다. 우리의 견해로는 정확한 기간을 명시하는 것은 명확한 증빙자료가 없기 때문에 합당하지 않다. 어떤 시기가 맞는 것인지는 알라께서만 아실 뿐이다. 


아브라함의 성장기

아브라함(그분께 평화가)의 소년기 시절은 그의 형제의 아들인 롯(그분께 평화가)과 함께 이라크에서 보냈다. 아브라함은 유일하신 알라를 믿고 정의를 추구하며, 도덕과 윤리를 지키고 선을 사랑하는 속에서 성장했다. 
알라께서는 그에게 알라를 기억하고 평화와 올바른 인도 그리고 알라의 길에서 다와(선교)함에 있어서 고난을 참아내는 인내심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슬기 그리고 현명한 판단과 좋은 예절 등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그의 형제의 아들인 롯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 이라크 땅에 올바른 인도를 가지고 왔었다.
알라께서는 말씀하셨다.
“또한 우리(하나님)는 이전에 아브라함에게 그의 지침서를 주었으며 우리(하나님)는 그를 잘 아느니라”(안비야장 51절)
아브라함이 성년에 이르렀을 때 그는 알라에 대한 열망과 생각과 경배를 위한 명상을 많이 가졌었다. 당시 그는 매우 영리하였으며 알라께서 진실을 볼 수 있도록 도와 주셨다. 그는 매우 훌륭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매우 예절 바른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의 민족 즉 칼데아인들의 교리는 우상숭배를 하고 우상을 성스럽게 생각했으며 그것들을 위해 신전과 우상을 만들었다. QISSAH AL HADARAH(2권 211쪽)란 책의 작가 왈림 다이오란트가 언급하기를 왕들이 만약 그들의 신들이 관심 밖에 있다고 생각되면 신전을 건립하고 가구들을 장식하고 음식과 술을 바쳐서 설득을 했었다. 당시 바빌로니아의 사람들에게는 많은 신들이 있었다. 각 도시마다 각 고을마다, 각 지방마다 신들이 있었다, 이 모든 신들은 한 신에게 복종한다고 믿었다. 작은 신들이 복종하는 큰 신의 이름은 무르닥이며 그들에게는 가장 큰 신이다. 
바빌로니아의 왕 나마루드 본 칸만 본 카우시는 본인 스스로 신이라 자처했으며 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그를 신으로 숭배하도록 하였다.

아브라함의 그의 민족들에 대한 다와 

알라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인간들이 우상 및 다른 여러 신들을 경배하는 것을 없애고 유일하신 알라를 경배하는 방법을 인간들에게 가르치고 하나님의 유일성을 알려주기 위하여 그분을 인도하셨다.
아브라함의 부친은 직업상 잡신을 섬기는 사람이었다. 그는 돌로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었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버지의 이러한 방황과 다신 숭배를 보고 알라의 엄중한 벌이 그의 아버지에게 있을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가장 걱정되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방황과 불신을 없애기 위하여 가장 먼저 다와(선교)를 시작했다. 
그는 그의 아버지의 불신과 방황을 없애고 진정한 믿음으로 이끄는데 매우 열성이었으며 그의 아버지를 향한 친절과 정성으로 다와(선교)를 포기하지 않았다. 
지고하신 알라께서 아브라함 그의 아버지에게 행한 다와(선교)를 다음의 꾸란에서 언급하셨다.
“아버지 당신께 이르지 못한 지식이 저에게 이르렀나니 저를 따르십시요 제가 당신을 바른길로 인도하겠습니다 아버지 사탄을 숭배해서는 아니됩니다 실로 사탄은 하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벌을 받아 당신께서 사탄의 친구가 될까 두렵습니다”(마리아장 43절-45절)
우리는 상기의 꾸란 구절에서 부모에게 선교함에 있어서 세 가지 중요한 점을 알 수 있다. 
1. 예의와 공경으로 부모에게 부드럽게 설명을 한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오 아버님이시여와 같이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걱정으로 부르는 것이다.
2. 예의로서 아버지의 무지함을 비난하지 않고 권유한다. (아버지 당신께 이르지 못한 지식이 저에게 이르렀나니) 
아브라함은 그에게 계시된 알라의 유일성에 대한 다와(선교)를 그의 아버지에게 언급하면서 사도 또는 예언자로서의 위치를 나타내지 않고 위의 구절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의 아버지에게 전해지지 않았던 지식이 알라로부터 그에게 계시되었다는 표현을 썼다. 
3. 아버지에 대한 진실한 염려를 그의 다와(선교)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이것은 진실을 알고 행하며 알라를 믿는 모든 아들들이 그들의 부모들처럼 가까운 식구, 친척들을 엄중한 죄악으로부터 보호하고 지옥의 불로부터 구해내서 알라께 이르도록 하는 것이며 이것은 당연한 의무이다. 
“믿는 사람들이여 인간과 돌들이 연료가 되어 타고 있는 불로부터 너희 신과 너희 가족을 구하라”(타흐림장 6절)
아브라함은 알라의 유일성을 전파하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책임이 있고 다음의 말씀처럼 알라께서는 그에게 지침서를 주었다. 
“또한 우리(하나님)는 이전에 아브라함에게 그의 지침서를 주었으며 우리(하나님)는 그를 잘 아느니라”(안비야장 51절)
아브라함은 그의 아버지를 불지옥으로 부터 구하려는 소망이 매우 강했다. 유일하신 알라에 대한 신앙심을 다와 할 의무를 가진 사람은 우선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 이후 그의 이웃과 지역 사람들에게로 다와 해야 한다. 알라께서 말씀하셨다.
“그(아브라함)와 아버지와 그의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당신들이 헌신하는 이 우상들은 무엇이냐”
주목할 것은 아브라함이 그의 이웃들에게 다와(선교) 를 시작할 때 그들이 신성시하고 경배하고 있는 우상들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였다. 이 질문은 그것들의 실체와 재인식을 촉구하는 선교이다. 그들의 이유들은 아브라함이 의도한 것을 주의 깊게 생각했다. 그들은 우상의 실체에 대하여 재삼 생각한 이후 그들은 조상들에게로 핑계를 돌리는 것 이외에 대답이 없었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의 조상들이 그것들에 헌신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당신들과 당신들의 조상들은 중대한 과오를 저지른 것이다 그들이 말하기를 당신은 진실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장난을 하는 것인가 그가 말하기를 당신들의 주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주님이시며 나는 그것을 믿고 증언하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이것이 바로 앞서 살았던 사람들의 우상숭배의 실체이다. 그들은 위와 같이 대답함에 있어서 전혀 상이한 것이 없었다. 동아시아 지역의 우상 숭배자들에 대한 다와(선교)에 있어서도 나의 견해는 마찬가지이다. 만약 내가 그들에게 알라의 유일성과 그들의 교리가 잘못된 것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면 그들은 “어떻게 우리 조상들이 경배했던 방식을 버릴 수 있느냐”라고 대답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 민족. 우리 국가. 우리가 속한 사회의 일반적 대답이다. 아브라함께서는 국민들 보다 그의 지역 사람들에게 더 많이 다와(선교)를 선교하였다. 다음의 꾸란 구절이 그것을 설명한다. 
“그(아브라함)가 그의 아버지와 그의 백성에게 무엇을 숭배하고 있습니까 말했을 때 그들이 대답하길 우리는 우상들을 숭배하며 우리는 이에 헌신하니라 그(아브라함)가 말하길 여러분이 기도를 드릴 때 그들이 여러분에게 귀를 기울이던가요 아니면 여러분에게 유용하던가요 아니면 해를 끼치던가요 이에 그들이 대답하길 그렇지 아니하며 우리의 선조들이 그렇게 함을 보았도다 그가 말하길 여러분은 여러분이 숭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과 여러분의 옛 조상들이 숭배한 것은 무엇입니까”(슈아라장 71-76절)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명확한 설명을 듣고 그들의 교리와 그들의 사상이 흔들렸다. 이것이 올바르지 못하고 부정한 이들의 실체이며 올바른 교리를 믿는 사람들은 평온할 따름이다. 예를 들어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질문하기를 [당신은 진실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장난을 하는 것인가]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모든 확신과 평안을 가지고 말하였다. [당신들의 주님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나는 그것을 믿고 증언하는 사람들 중하나이다]
진실로 주님은 인간들의 주님이시고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며 모든 사물을 창조하셨으며 모든 것의 왕이시다. 창조주 그분은 유일하신 주님이시며 오로지 그분만이 완벽한 복종과 경배를 받을 자격이 있으신 분이시며 어떠한 장난도 용납이 안 된다. 오로지 올바른 이성으로 그분(알라)의 인도를 따라 행동과 생각으로 그분께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을 통하여 그분의 유일성과 주님의 신성의 실체를 찾아 올바르게 인식하여야 한다. 아브라함 시대 (그의 아버지와 그의 사람들에게 던진) 질문은 사람들을 알라에게로 선교하는 한 방법을 제시해준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만족하기 위해 선택했던 그들의 교리가 중대한 과오이며 길 잃고 방황하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였다. 
“일러가로되 아브라함이 그의 아버지 아자르께 이르길 당신은 우상을 신으로 모시나이까 당신과 당신 백성은 분명히 잘못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니”
지고하신 알라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진실을 주셨고 알라의 유일성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알라께서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우리 (하나님)는 아브라함에게 권능과 하늘과 땅의 법칙을 보여주었으니 이는 그로 하여금 확고한 신앙을 갖는 자 가운데 있도록 함이었느니라 그리하여 밤이 그를 어둠으로 가리우니 그는 별을 보고 이 별이 나의 주님이란 말인가 말하고 그것이 사라졌을 때 나는 사라지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함이라 말하였더라 찬란하게 나를 인도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분명 방황하는 자들 가운데 잊게 되리라 하였더라 찬란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서 이것이 나의 주님이란 말인가 이것이 모든 것 가운데 가장 큼이라 하시니 그 태양이 사라졌을 때 백성들이여 나는 이제 너희가 숭배하는 것에서 벗어남이라 하였다 나는 실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그분께로 나의 얼굴을 (신에 관해서) 돌렸으니 나는 결코 하나님께 다른 우상을 비유하지 않으리라”(안암장 75절-79절)
사람들은 아브라함(그분께 평화가)의 설명이 뜻하는 바를 깨닫게 되었으며 그들의 이성은 우상 숭배 사상에서 그들의 교리가 아무 소용없고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점차적으로 인식하였다. 진실로 신은 항상 존재하시며 해와 달이 서산에 지듯이 신의 활동은 지지 아니며 진실로 창조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특별히 아브라함이 알라께서는 서산에 지거나 없어지거나 하시는 분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 계시고 항상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명확한 증거와 인도를 들어 설명하고 교훈을 일깨워 주었지만 그들로부터 다와(선교)를 받아들이는 어떠한 대답도 없었다. 그러는 사이 우상 숭배자들에게 그들의 축제일이 다가왔다. 그들이 우상들을 위해 음식과 음료를 차려놓고 축제를 벌이기 위해 산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당시 아브라함에게도 같이 가서 그들과 함께 즐기기를 청했으나 아브라함은 핑계를 대고 거절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상들이 있는 곳으로 도끼를 가지고 갔다. 그리고 우상들과 음식들과 음료들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너희들은 먹을 줄 모르며 너희들은 말을 할 줄 모른다.”
아브라함은 그들이 말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며 움직이지도 못하고 자신들을 보호할 수도 없으며 스스로 유익함을 꾀하지도 못하는 오직 돌덩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우상들을 믿는 자들에게 그것을 예증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만약 그들이 자신조차 스스로 보호하지 못하고 부서진 우상들을 보면 그들이 올바른 길로 돌아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도끼로 우상들을 모두 부셔 버렸으며 가장 큰 신이라고 믿는 우상만 무능함의 증거로 남겨 놨다. 그들이 축제를 끝내고 돌아 왔을 때 그들은 통상적으로 축제일에 행했던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그들의 우상이 있는 곳으로 왔으나 놀랍게도 그것들은 다 부서져서 땅바닥에 널려 있었다. 그들이 말하기를: 누가 우리의 신들을 이렇게 만들었느냐? 일은 이미 벌어졌고 질문은 바보 같은 것이다. 우상들 스스로 보호를 못했었나? 그들 중 몇몇이 말했다. 아브라함이라고 불리는 청년이라고 들었다. 그들은 아브라함에게로 가서 말하기를: 아브라함! 누가 우리의 신들에게 이런 짓을 했느냐?
아브라함이 대답하기를: 여기에 있는 큰 신이 했다. 이것에게 물어 보아라 만약 이것이 말을 할 수 있다면. 
그들에 대한 아브라함의 대답은 가짜 신들의 실체를 알게 해주고 그들이 깨닫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그대가 이미 이들은 말하지 못한다고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느냐 
아브라함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당신들에게 해를 기치거나 당신들을 유익하게 하지 못하는 신을 섬기느냐? 그대들은 이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알라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려 하느냐? 그대들은 올바른 길로 돌아와 그대들을 창조하신 땅 위의 모든 것들을 그대들을 위해 창조하신 위대하신 주님이며 진정한 신이신 알라를 영접하여야 한다. 오로지 그분만이 경배를 받을 실 수 있으며 그분 이외의 다른 그 어느 것도 신성시되어서는 안 된다. 당신들이 경배하는 것은 돌덩일 뿐 결코 해를 끼치거나 도움을 주지도 못한다. 그것들은 오로지 당신들의 손으로 만든 우상에 불과할 뿐이다.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말을 듣고 화가나 이성을 잃고 아브라함을 불태워 그대들의 신들이 승리하도록 하라고 말을 했다. 아브라함은 화형 선고를 받았다. 사람들은 형이 집행 되는 것을 보기 위해 모였으며 와디는 장작으로 가득찼다. 
그들은 불을 붙인 후 아브라함을 투석기에 넣어 불속으로 던졌다. 그들은 그들의 교리에 따라 형을 집행했고 그들의 신들과 그들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확신했다. 
이것은 자신 스스로를 위해 삶도 성장도 죽음도 선도 악도 그 어느 것도 가질 수 없는 보잘것없는 피조물이 내린 판결이다. 그들은 진실로 알라께서 창조주이시고 그분만이 모든 피조물들을 능가하여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잊었다. 불 또한 알라의 피조물이다. 알라께서 창조하여 뜨겁게 만드셨으며 다른 것을 태워 소멸시키는 힘을 주셨다. 불의 존재는 지고하신 알라에 의해 그분이 원하는 대로 바뀐다. 투석기에 의해 하늘을 날아갈 때 아브라함에게 천사 가브리엘이 내려와서 말하기를 아브라함 그대에게 도움이 필요한가? 아브라함이 그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도와주는 것이라면 원치 않고 알라께서 도와주시는 것이라면 도움을 받겠다. 그러자 지브리엘 천사가 자신이 알라로부터 온 것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그러자 알라께서 불을 향해 명령하기를: [불이여 아브라함에게 평화롭게 차갑게 되어라] 불은 와디를 뒤덮고 와디 주변의 모든 것들을 태워 버릴 것처럼 힘이 막강해져 있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불 속에 떨어졌을 때 그는 뜨겁거나 찬 것을 느끼지 않고 안전하게 머물렀다. 이것이 지고하신 알라의 기적이며 사람들의 죄악으로부터 아브라함을 구하신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그의 가족들과 함께 시리아로 이주하였다. 
위의 이야기로부터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무엇이 지고하신 창조주 알라와 우상들과의 차이이며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는가? 그 신들이라 주장하는 것들은 오로지 돌덩어리 또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우상에 불과한 것으로 스스로를 위해 어떤 해나 이익도 행하지 못한다. 당시 사람들은 그들이 승리한 것으로 여겼으나 결국 그들은 그들의 신들이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진실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비로소 저들이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은 모든 우상들에게 적용된다. 그들은 그들을 만들어 주는 사람이 필요로 하며 그들을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들은 생명이 없는 존재이며 움직임도 느낌도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알라께서는 변하지 않는 아브라함과 모세 그리고 모든 인류의 주님이시다. 그러나 유일하신 창조주에 대하여 무지하고, 그것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자란 사람은 사탄이 그를 지배하고 그의 영혼을 파괴하여 그 자신 스스로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망상에 젖게 한다. 대표적인 사람이 바빌로니아의 왕인 나마루드 븐 칸안이다.
그는 자만하여 바빌로니아인들을 협박해 그를 경배하도록 하며 스스로 신이라 자처했으며 바빌로니아인들은 그것을 믿었다. 다음에 언급하는 것이 꾸란에 명시된 예언자들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이 바빌로니아의 나마루드왕과 논쟁을 한 내용이다. 알라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권능을 주었다 해서 그의 주님에 관하여 아브라함과 논쟁을 하려 하는가 이때 아브라함 가로되 나의 주님은 생명을 부여하고 또 생명을 앗아가는 분이시니라 하니 이에 그가 대답하길 내가 생명을 부여하고 또 생명을 빼앗아 가도다 이에 아브라함 가로되 그분은 동에서 태양을 뜨게 하여 서쪽으로 지게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하니 믿음을 불신한 그들은 당황하였느니라 그리하여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인도하시지 아니하시도다”(바까라장 258절)
아브라함(그분께 평화가)이 바빌로니아의 나마루드를 토론에 끌어 냈을때 그는 아브라함에게 알라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진실로 주 알라께서는 유일하신 주님이시며, 유일하신 속성을 갖고 계시며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생명을 주시기도 또 죽이기도 하시는 분이시다]
바빌로니아의 라마루드가 말하기를: [나도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또 죽이기도 한다] 아브라함이 말하기를 : [어떻게 그것을 할 수 있느냐] 그가 말하기를: [사형수 두 사람을 데려다가 그들 중 한 사람을 죽이고 다른 한 사람을 용서해 주는 것이다. 이것으로 나는 죽어야 할 자를 살려주고 또 죽일 수 있는 것이다. ] 왕의 말에는 모순이 있다는 것을 의심 없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삶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즉 생명이 없는 상태에서 완벽한 삶을 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살아있는 자를 용서해서 살려주는 것은 근본적으로 생명이 있는 것이라 나마르두왕이 행한 것을 삶을 준 것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사탄이 나마루드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자극해서 그 자신이 어떤 것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도록 하였지만 아브라함(그에게 평화가)이 다음의 꾸란 구절처럼 묵살해 버렸다. 아브라함이 그에게 말하기를 [그분은 동에서 태양을 뜨게 하여 서쪽으로 지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하니 믿음을 불신한 그들은 당황하였느니라]]
그들은 이에 대답할 바를 몰랐으며 진실 앞에서 그들의 혀는 굳어 버렸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다음의 구절처럼 생명과 죽음을 창조하신 알라의 능력을 알 수가 있었다. 
“죽음과 생명을 제정하시어 그것으로 너희 중에 선을 행함인가 시험하고자 하시니” (물크장 2절)
알라야말로 무에서 생명을 창조하시는 분이시다. 
알라께서 아담을 흙과 물로 창조하셨으며 그에게 영혼을 불어넣어 주셨고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다. 그 분은 생명과 죽음을 어떤 이유 또는 이유 없이 행하시는 분이시다. 아브라함과 예언자들 그리고 사도들이 이것을 믿는다. 또한 꾸란에 알라께서 생명을 주신 것을 언급하고 있다. 
“너희를 허약한 상태로 창조하신 후 허약한 너희에게 강함을 주시고 강한 너희에게 다시 허약함과 백발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 분(하나님)께서는 그 분(하나님)의 뜻에 따라 창조하시니 그 분(하나님)은 아심과 능력으로 충만하도다” (로움장 54절) 
“그 분(하나님)은 너희가 보듯 기둥 없이 하늘을 창조하셨고 대지 위에 고정된 산을 세워 너희로 하여금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하였으며 그 안에 모든 동물이 번성토록 두셨도다 또한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게 하여 그 안에 모든 고상한 식물이 자웅으로 자라게 하셨느니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창조이거늘 그 분(하나님)외에 누가 무엇을 창조했느뇨 내게 보여다오 그러나 죄인들은 분명히 잘못 속에 빠져있도다”(루끄만장 10절-11절)
이것이 바로 지고하신 알라께서 언급하신 그 분의 능력이다. 알라 이외의 다른 자가 이처럼 창조할 수 있겠는가? 만약 인간이 그것이 크든 작든 어떤 물건을 생산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알라의 피조물에 불과하다. 알라께서는 인간에게 이성을 주셨다. 그것은 오로지 알라의 피조물의 실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이성으로 인간들은 기술을 계발하여 알라의 피조물들 중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밝혀낼 수는 있지만 지고하신 알라의 능력을 벗어나지 못하는 피조물의 존재다. 어느 누가 무엇을 만들거나 밝혀냈다고 해서 창조자라 불리지는 않는다. 창조자란 말은 전혀 없는 무의 상태로부터 유를 만들어 내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알라 이외에 그 어느 누구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다. 알라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이때 아브라함이 강구하길 주여 죽은 자를 어떻게 소생시키나이까 이에 가로되 네가 믿지 못하겠단 말인가 아닙니다 그러나 제 마음이 평안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에 가로되 네 마리의 새를 잡아 그들을 길들여 각 언덕 위에 두고서 그들을 다시 불러보아라 이에 그들은 서둘러 너에게 오리라 그리하여 권능과 지혜가 하나님께 있음을 알게 되리라” (바까라장 260절)

5. 시리아로의 이주

아브라함은 그의 고향에서 70세가 된 후까지 그들을 유일하신 알라의 믿음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알라께서는 아브라함이 그의 부인과 그의 조카인 롯과 시리아로 이주하도록 하셨다. 꾸란에 아브라함이 알라와 알라의 길을 위해 이주하는 것을 그의 말로 언급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실로 나는 나의 주님으로부터 안식처를 찾나니”(안카부트장 26절)
아브라함(그분께 평화가)은 다신교도들의 땅과 사람들을 떠나 지고하신 알라를 경배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땅으로 이주하는 것, 그것은 바로 알라의 길을 따라 이주하여 시리아로 가는 것이었다. 알라께서는 아브라함이 그곳에서 정착하여 자손을 번창시키도록 배려를 해 주셨다. 시리아에서 아브라함은 다와(선교)를 하였으며 알라의 명령과 보호 속에서 이주하며 다녔다. 알라께서는 오로지 필요한 교리의 근본을 언급하였지 아브라함의 생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알라에게로의 다와(선교)에 열중하고 유일하신 주님과 유일하신 신성을 알리는데 전력을 다했다. 무익한 자들과의 이성과 명확한 말로 대결하는 것 바로 이 부분이 우리가 살아가는데 중요한 부분이며 시간이나 장소 같은 것은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하겠는가.
알라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훌륭한 자손들을 주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올바른 교리에 의한 교육과 지도이다.

아브라함(그에게 평화가)의 부인들

아브라함에게는 여러 명의 부인들이 있었으며 몇 명 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그에게 세 명의 부인이 있었다고 전한다. 첫 번째 부인이 숙모의 딸 사라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장남 이스마일(그분께 평화가)의 어머니인 이집트인 하자르이며 세 번째는 여섯 명의 아들을 낳은 바끄뚜라이다.
1. 사라: 그녀는 아브라함의 숙모의 딸이다. 그녀와는 시리아로 이주하기 전 고향에 있을 때 결혼했다. 그녀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자였으며 당시 폐경기였었다. 그녀가 90세가 되었을 때 알라께서는 아들을 주셨으며 그가 바로 이삭이다. 그때가 아브라함 나이 백세가 넘었을 때이다. 그녀의 임신과 출산은 알라의 기적으로 여겨지며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에게 훌륭한 아이를 낳게 하였다. 그의 후손들로부터 이스라엘의 모든 예언자들이 나오게 했으며 알라께서 이 기적을 계속 지속되게 했다. 지고하신 알라의 위대함과 능력을 기억하라.
2. 하자르(이집트인): 아브라함이 이집트 여인과 결혼을 했는데 그녀의 이름이 하자르이다. 그녀는 유일신 알라를 믿었으며 아브라함을 믿었고 알라를 경외하고 알라를 경배함에 몸과 마음으로 헌신하였다. 그래서 알라께서는 그녀에게 장남인 이스마일을 보내셨다. 그리고 그로부터 올바르고 훌륭한 후손들이 나오게 했으며 알라께서 그의 후손들이 땅 위에서 유익하고 자비로우며 정의롭게 살도록 하였다. 하자르는 선한 여자로 선한 인간의 아버지인 이스마일을 임신했다. 아브라함과 하자르의 아들인 이스마일의 자손들로부터 최후의 사도이자 예언자이신 무함마드(그분께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께서 오시게 되었다. 
3. 바끄뚜라: 아브라함이 그녀와 결혼을 했고 알라께서는 그녀에게 여섯 명의 아들의 축복을 내리셨다. 구약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되었다. “그녀는 시므란, 욕산, 므단, 미디안, 이스박과 수아의 아들들을 낳았다. 그들 각자에게 후손들이.........”(창세기 25절)
알라께서는 아브라함의 아들 미디안으로부터 마딘 부족을 이어가게 하셨다. 그들 중에서 예언자 슈아이브도 보내셨다. 이들이 아브라함의 아들들이며 딸들에 대해서는 언급된 바가 없어 알 수가 없다. 
아브라함의 여섯 아들들과 그의 후손들은 시리아 남쪽지방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야곱은 이집트로 이주하여 그의 아들 요셉과 정착하였다. 그들이 모세 시대까지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시조가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연대와 예언자가 아닌 사람들의 이름은 구약에서 근거를 둔 것이다.

6. 아브라함의 이집트여행과 하자르와의 결혼 이야기 

아브라함은 칸안의 땅 시리아에 정착해 살았는데 어느 해 아주 심한 가난이 사람들을 다른 지방으로 이주하게 만들었다. 아브라함도 그의 부인 사라와 이집트로 이주하였으나 당시 이집트왕은 폭군이었다. 그는 그의 땅에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는 것을 알면 결코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부카리 하디스의 예언자의 책 중 알라께서 아브라함을 칼리프로 선택하신 장에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아부 후라이라가 전하기를: 사라와 아브라함이 살던 어느 날 어떤 이가 왕에게 와서 말하기를 : 이 곳에 한 남자와 그와 함께 사는 가장 훌륭한 여인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녀에 대하여 묻기를 ‘이 여자가 누구냐?’ 아브라함이 대답하기를 ‘내 누이이다’ 사라가 왔을 때 말하기를: ‘사라! 이 땅 위에는 당신과 나를 제외한 어떤 믿는 자도 없다. 이 사람이 나에게 당신에 대해서 묻기에 나는 당신이 나의 누이라고 대답했으니 나를 부정하지 말아라.’ 그리고 아브라함은 사라를 왕에게 보냈다. 왕은 보고 두려워 말하였다. ‘알라께 나를 위해 기도하라’ 그래서 그녀는 알라께 기도를 하였으며 왕은 그녀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나서 왕은 다시 그녀를 불려 들였으나 또 다시 두려운 생각이 들어 그녀에게 왕을 위해 알라에게 기도를 드려달라고 말했다. 왕은 하녀들을 불렀고 사라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인간의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지 않고 사탄의 모습으로 왔다. 그러면서 하자르를 그녀의 종으로 같이 가도록 하였다. 당시 아브라함은 예배에 전념하고 있었다. 사라가 말하기를 알라께서 대답하사 불신자들과 불성실한자들을 능멸하셨다 그리고 하자르를 종으로 주셨다. 아부 후라이라가 말하기를: 천국의 물의 자식들이여 그녀는 그대들의 어머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부인 사라와 그리고 이집트 여인 하자르와 함께 시리아로 돌아왔다. 당시 사라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으로 나이가 이미 90세를 넘었다. 그녀는 그녀의 남편이 아이를 원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브라함은 알라께 훌륭한 자손의 축복을 구하였다: 주님이시여 나에게 훌륭한 자손을 내리소서
구약성서에 나오기를: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진실로 주님께서는 나에게 아이를 금하셨다. 그래서 나는 당신이 하자르와 결혼하는 것을 원한다. 알라께서 그녀가 당신의 아이를 낳아줄 수 있도록 은총을 주실 것이다. 
사라는 당시 나이가 많이 들었고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태였다. 아브라함은 하자르와 결혼했고 아브라함이 했었던(주님이시여 나에게 훌륭한 자손을 내리소서) 기도를 들어주셔서 하자르가 이스마엘을 낳도록 했다. 그리고 그에게 훌륭한 자손들을 선물하셨다. 그리고 알라께서는 사라에게도 아이를 주셨으며 그의 이름이 이삭이며 그의 자손들 또한 훌륭한 자손들이 되도록 하셨다. 

7. 아브라함과 그의 부인 하자르의 메카로의 이주

B.C1781년경 아브라함은 그의 부인 하자르와 그의 아들 이스마일과 함께 시리아 남부 칸안의 땅에서 살고 있었다. 그리고 B.C.1761년경에 알라께서는 사라로 하여금 둘째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하였다. 아브라함은 다음의 꾸란 구절과 같이 알라의 은총에 감사와 찬미를 드렸다 [제게 장남인 이스마일과 이삭을 주신 알라께 찬미를 드립니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유태인들이 그들의 필요와 욕망에 따라 왜곡되고 변질된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 것을 창세기 21장에 나타나 있다.
구약창세기 21장에 언급하기를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을 애굽인 하갈의 소생이 희롱하는지라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아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매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 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 부대를 취하여 하갈의 어깨에 메워주고 그 자식을 이끌고 가게 하매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봐 들에서 방황하더니 가죽부대의 물이 다한지라 그 자식을 딸기나무 아래 두며 가로되 자식이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살 한 바탕쯤 가서 마주 앉아 바라보며 방성대곡하니 하나님이 그 아이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가라사대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시매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 부대에 물을 채우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 거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그가 바란 광야에 거할 때에 그 아이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 여인을 취하여 아내를 삼게 하였더라] 위의 구약성서 구절에서 다음의 3가지의 사실을 알 수 있다. 
1.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의 구절로 부에 대한 열망
2. 중상과 질투 
3. 애정과 자비심의 결여 그리고 핍박
그러나 아브라함의 부인 사라는 이 세 가지 속성과 거리가 멀다고 나는 주장하고 싶다. 사라는 모든 예언자와 사도들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부인이며 그들의 어머니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바로 알라께서 재물을 탐내고 중상과 질투의 마음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녀의 신앙심은 지구상 그 어떤 여인보다도 강건했으며 가장 올바른 심성의 소유자였다. 이러한 속성은 중상과 질투와는 상반되는 속성이다. 그녀가 인간으로서 잘못을 할 수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중상과 질투 그리고 재물을 탐내는 것과 같은 형태의 잘못을 애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먼저 언급했던 유태인들의 구약 구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그들 자신들이 바로 재물을 탐하고 중상을 일삼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아이를 낳는 알라의 축복을 받은 올바른 여인인 사라에게서 이러한 나쁜 속성이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녀는 90세에 결혼을 했었는데 그녀가 폐경기 이후 임에도 불구하고 알라께서는 그분의 능력으로 그녀의 임신을 가능하게 했으며 그녀가 자애와 사랑으로 충만하도록 하였다. 이것을 보더라도 어떻게 그녀가 열사의 사막 한 가운데 어린아이를 버리게 할 수 있겠는가?
구약의 이러한 표현들은 자비로우시고 지고하신 알라의 말씀이 아니다. 구약은 모세께 계시되었던 알라의 경전이고 빛이며 올바른 자들을 위한 인도이시며 현 세계 인간들을 위한 교육과 축복이다. 꾸란은 다음과 같이 구약과 신약에 대해서 말한다. 
“일러가로되 모세가 인간을 위한 빛과 복음으로 가져온 성서는 누가 보냈느뇨” (안암장 91절)
이것으로 현재의 구약에 언급된 것들이 만약 알라께서 내려주신 신성한 경전과 상호 모순된다면 그것(현존의 구약)에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진실로 알라께서는 숭고하신 의도로 그의 아들 이스마일을 황량한 오아시스 땅으로 이동시켰다고 꾸란은 말한다. 그것은 바로 당시 그 지역에 유일신 알라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것은 아브라함과 모든 사도와 예언자들의 임무이기도 한다. 
알라께서는 알라의 복음을 알리기 위해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을 둘로 나누셨던 것이다. 하자르의 아들 이스마엘을 아라비아반도의 메카 와디로 이동시키도록 명령하셨던것이다. 
당시 아브라함과 하자르 그리고 이스마엘이 도착했던 그 지역은 매우 황량한 지역이었다. 아브라함은 약간의 물과 음식을 그들에게 남기고 떠났다. 싸이드 븐 주베이르가 전하기를 이븐 압바스가 말했다. : 아브라함께서 그의 어린 아들 이스마엘과 이스마엘의 어머니를 데리고 잠잠 위의 현재 메카 사원이 있는 곳에 왔다. 당시 그곳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으며 물이 나는 곳도 없었다. 아브라함은 그들에게 대추야자가 든 가죽부대와 물병을 남기고 그들을 떠났다. 이스마엘의 어머니는 아브라함을 쫓아가며 말하기를: 오! 아브라함이시여 우리를 이 황량한 곳에 버리고 어디로 가십니까? 라고 그녀는 여러 번 외쳤지만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들과의 이별의 슬픔을 보이지 않기 위해 뒤돌아보지 않고 계속 갔다. 그러자 그녀가 다시 말하기를: 알라께서 이것을 명하셨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그녀의 신앙심과 주님에 대한 굳은 신념 그리고 예언자의 아버지이신 아브라함에 대한 그녀의 믿음을 발견할 수 있다. 아브라함이 그녀의 질문에 알라께서 명하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녀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우리를 이렇게 놔두지 않으실 것이다 라며 되돌아 왔다. 
아브라함은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떠났다가 메카를 향하여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알라께 알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는 두 손을 들고 말하기를: [주님이시여 진실로 나는 성스러운 당신의 집이 있는 이 황량한 땅 위에 나의 자손들이 살도록 하였습니다. 주님이시여 그들이 여기서 예배를 행하고 인간들의 마음이 되고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면 그들은 진실로 감사를 드릴 것입니다. 주님이시여 당신께서는 하늘과 땅위의 모든 것들을 아시며 우리는 그 어떤 것도 당신께 숨길 수 없습니다. ]
하자르는 이스마일에게 젖을 먹이고 그녀는 물을 마셨다. 그러나 물이 바닥이 나고 그녀의 아들이 갈증을 느끼자 그녀는 여기저기를 뛰어 다니며 물을 찾아 다녔다. 
그녀는 산 근처의 사파를 발견하기에 이르렀으며 그쪽으로 향하여 와디를 발견하고 그곳에 어느 누가 있는지 살펴봤지만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와디를 찾기 위해 사파에서 내려와서 소매 끝을 들었을때 그녀는 와디에 이를 때까지 달리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마르와에 도착하였고 그곳에서도 누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녀는 이렇게 일곱 번을 달렸다. 이븐 압바스가 말하기를 : 무함마드(하나님의 평화가 그 분께 깃드시기를) 사도께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파와 마르와를 왕복하는 것이다. 
그녀가 마르와에 올랐을 때 그녀는 어떤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귀를 기울이니 또 소리가 들렸다. 천사가 말하기를: 당신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나는 들었다. 그녀가 잠잠에서 천사를 발견했을 때 물이 흐르는 것을 발견하였으며 그래서 그녀는 천사가 시키는 대로 물을 모아 병에 담자 물이 용솟음쳐 나왔다.
이븐 압바스가 말하기를 : 예언자(그분께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께서 말씀하시기를: 알라께서 이스마엘 어머니에게 자비를 베푸셨다. 만약 잠잠을 그대로 두었거나 물을 퍼내지 않았다면 잠잠은 물이 솟구치지 않고 그대로 있었을 것이다. 

8. 일부다처로 부터 얻어지는 교훈

결혼은 신이 정해 주신 것이다. 창조주께서는 피조물들을 남과 여로 구분 지어 창조하셨다. 그리고 남녀가 만나는 것을 땅 위에서 물질적 삶을 영위하는 수단으로 만드셨다. 그러나 몇 몇의 철학자들은 이러한 천성을 거부하였으며 그들 중에서 철학자 마니는 이세상의 물질적 타락과 악을 줄이기 위하여 독신생활을 주장하였으며 빛이 어둠과 섞이는 것은 사악한 것이니 어둠으로부터 떨어져 있어야 하기 때문에 결혼을 금하여 종족보존을 끊어 빛을 보호하려 하였다. 그리고 철학자들 중에는 조건 없이 결혼을 허락하고 권장한 학자들도 있었다. 이 주장을 한 대표적인 철학자는 A. D 487년에 태어난 무즈 닥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간들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그래서 차별 없이 평등하게 살 권리가 있다. 어떤 자가 다른 사람을 지키고 보호하기를 갈망한다면 샤흐르 싸타니가 말하기를 무즈닥은 여자를 허락하고 재물을 갖는 것을 허용했으며 사람들이 물과 불과 목초를 가지고 서로 협력하는 것처럼 협력하도록 했다
그러나 현재의 기독교 학자들은 올바르고 정당한 가족을 형성하기 위한 목적이 없어도 남녀가 만나는 것을 허용했다. 그리고 또한 여자 친구들을 만나는 것도 허용했다. 이러한 모든 것은 지고하신 알라의 법에 명확히 위배되는 것이며 모든 예언자와 사도들을 부정하는 것이다. 지고하신 알라께서는 인간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셨으며 결코 정해진 법칙이 없는 혼돈 속에 내버려두지 않으셨다. 올바르고 숭고한 법칙을 정해주셔서 남녀가 모두 똑같이 지켜갈 수 있도록 하셨다. 남녀가 만나는 것 또한 지고하신 알라께서 정해주신 법을 준수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것이 알라께서 원하시는 것이고 허용하신 것이다. 그리고 알라께서는 그분의 사도들을 통해서 올바른 결혼을 보여주었고 결혼을 원치 않는 마리얌의 아들 예수만을 제외한 모든 사도와 예언자들이 결혼을 하였다. 예수는 알라의 길에서 다와에 여념이 없었다. 그의 생애 또한 그의 적인 유태인들의 핍박과 억압으로 가득 찼으며 지상에서의 그의 생애 또한 매우 짧아 33세로 승천하였다. 그를 제외한 모든 사도들과 예언자들 모두가 부인이 한 명 이상이었으며 그것 또한 알라께서 의도하신 가르침이었다. 
아브라함께서는 셋 또는 네 명의 부인이 있었으며 야곱 또한 네 명의 부인과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았다. 그리고 무함마드(그분께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사도께서도 여러 명의 부인과 결혼을 하였다. 이러한 모든 분들께서 여러 명의 부인과 결혼을 한 것은 인간의 동물적 욕구와 성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 일부다처 법을 당시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함이었으며 또한 알라를 향한 다와를 위한 방법이었다. 여기서 나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에게 여러 명의 부인들이 있었다는 점에서 다음의 두 가지를 유추할 수 있다.
1. 일부 다처의 허용 
2. 일처 다부의 금지
알고 있듯이 알라께서는 남성과 여성을 창조하셨고 각자의 본분에 맞게 육신을 창조하셔서 남성은 여성에게 주고 여성은 그것을 받아 임신을 한다. 
이것은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여기서 받는 자는 자신이 받는 것을 보존하고 성장시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며, 남자가 여자의 자궁 내에 정액을 심는 것은 모두가 아는 것이다. 그리고 정액이 여자의 자궁 내에 착상한 뒤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 서서히 아이로서의 형태를 갖추어간다. 알고 있듯이 한 여자의 자궁 내에 많은 남자들이 정액을 남기게 되면 그들 중 누가 임신을 시켰는지 정확히 규정지을 수가 없게 된다. 진실로 알라께서는 아이의 계보가 그의 아버지로부터 시작되도록 했지 그의 아버지가 아닌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도록 하지 않으셨다.
이것 때문에 알라께서는 한 여자가 여러 남자와 관계를 갖는 것을 금하셨다. 
이러한 행위를 허용하거나 행하는 자들은 진실로 짐승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만약 여러 여자들의 자궁 속에 한 남자가 씨를 뿌린다면 그의 혈통은 결코 섞인 것이 아니며, 자식이나 아비를 잃어버린 것도 아니다. 현재의 기독교 사회에서는 여자가 결혼 전에 많은 남자를 만나는 것을 허용한다. 임신을 하여 아기를 낳았을 경우 단지 생각만으로 아이의 아버지를 추측할 수는 있지만 남자는 받아들일 수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 사회에서 많은 사생아들을 볼 수가 있다. 이러한 행위들이 알라께서 예수에게 내려주셨던 법에 위배된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알라께서 예수께 내려 주셨던 법은 그분 이외의 모든 사도와 예언자들에게 내려 주었던 것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한 여자가 많은 남자와 관계한다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은 명확하다. 무함마드 가잘리가 그의 책 피크흐 씨라에서 언급한 것이 흥미롭다.
그가 말하기를: 나는 여러 명의 여자를 갖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는 자들에게 읽어주었다. 왜 남자들이 여러 부인들을 만드느냐 여자들은 여러 남편을 만들지 않습니다. 나는 이러한 질문을 한 이들 모두가 부정하고 탐욕스럽고 추악한 것을 보았다. 이들의 잘못된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남녀가 서로 관계를 갖는 가장 큰 목적은 순결한 상태에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남자들이 찾아오는 여자의 집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과연 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가진 여자가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을까? 여자의 위치는 임신을 하는 것이지 임신을 시키는 위치가 아니다. 여러 명의 부인을 얻는 것은 오래전 부터 허용되어 왔던 관행이며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다음처럼 그것이 방법과 명칭에 따라 차이가 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여러 여자를 거느리고 있지만 부인처럼 거느리는 것이 아니라 부인은 오직 한 명이고 나머지 여자들은 간통을 하는 여자 친구 일뿐이다. 
진실로 알라께서는 여러 명의 부인을 얻는 것을 허용했지 여자 친구들을 갖는 것을 허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브라함과 야곱 그리고 다른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생애를 통하여 알 수 있다. 무함마드 가잘리가 그의 책 피끄흐 씨라에서 언급하기를: 사회적 법칙과 경제적 충족은 인간 자신들의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인식하고 준비를 하였거나 무지하여 소홀히 하였다면 그 결과는 그들에게 바로 나타난다. 그것은 어떤 남자가 여자를 부양하고 사회적 환경이 무난하냐라는 것으로 알 수 있다. 만약 무지하여 소홀히 했다면 여자에게 고통과 불평을 안겨 줄 것이다. 
여기서 남녀 숫자의 비율에 주목하자 만약 똑같을 수 있고 두 성별 중 한 쪽이 많을 수 있다. 
만약 똑같다면 또는 여자의 수가 더 적다면 여러 명의 부인을 얻는 것을 사람들에게 공개하지 않으며, 자연스럽고 올바르게 짝지워지도록 두며 자신의 현실과 자신의 몫에 만족하게 하자. 만약 여자의 수가 많다면 다음의 세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한다. 
1. 그들 중 적당수를 죽을 때까지 결혼을 금지시킨다.
2. 부인 이외의 여자 친구를 만들어 간통을 인정한다. 이것은 올바른 종교와 올바른 사회에서 모두 경멸하는 방법이다.
3. 여러 부인을 갖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다. 
여자에게 남자를 금지시키는 것을 여자들은 원치 않을 것이다. 또한 정당하지 않은 침대 위의 생활을 여자들은 원치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오직 남은 방법은 하나뿐인 일부다처가 현명한 방법이며 그녀의 아이들을 위하여 올바른 계보를 승계 시키는 것이다.
남자들에게 물질적 재산의 차이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많은 유산을 상속받고 어떤 이는 전혀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삶의 기본요소를 많이 상속 받은 이와 전혀 그렇지 못한 이 사이에는 평등이라는 단어는 올바르지 않다. 음식을 먹고 싶은 욕망이 강한 사람에게는 허락하고 약한 사람들에게는 허락한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반면 만약 부인이 나이가 많거나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병들고 약하다면 왜 이러한 결점을 문제 삼지 않느냐? 진실로 과거에는 이러한 여인들이 남편의 보호아래 그대로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 다른 여자가 와서 부인이 의무를 다했었다. 그리고 알라께서는 그와의 다른 것에 대한 즉 도박과 같은 종류를 즐길 것을 엄격히 금하셨으며 오로지 부인들에게 올바르고 정의롭게 대하도록 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 또는 부인과 자식들을 학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여러 부인을 맞이할 수 없다. 부인들 사이에 공정해야 하고 부양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이슬람에서는 가족 부양의 책임은 남자에게 있지 여자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보면 세 가지 경우가 있다.
1. 젊은 청년기때 사라와의 결혼
2. 첫번째 부인의 폐경기로 인한 임신 불가능의 이유로 하자르와의 결혼
3. 세 번째 부인 바끄뚜라와의 결혼(오직 다와의 목적)
그는 이 세 가지의 상황에서 여러 부인을 맞이했다. 야곱의 경우를 보면 그의 부인이 아무런 결함이 없지만 인간이 인간을 숭배하는 것을 없애기 위한 다와의 목적으로 네 명의 부인과 결혼하였다. 그는 두 명의 여인(종이 아닌 여인)과 결혼했었고 그들과 이혼한 후 두 명의 여종과 결혼하였다, 알라께서는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지만 인간이 인간을 숭배하는 것을 경멸하신다. 무함마드(그분께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는 하팀 똬이의 부족을 이슬람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그의 딸과 결혼하였다.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결혼은 음탐함이나 욕정에 의한 것이 아닌 알라에게로의 다와를 위한 목적이었다.
그리고 지고하신 알라의 명령을 실현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다. 사도께서 행하신 모든 행동은 알라의 명령을 실행하신 것이다. 여러 명의 부인을 맞이하는 것은 그것에 대한 인간사회의 필요성에 의한 알라의 법에 따라서이다. 일반적으로 올바른 여성은 인간의 근본적인 필요성 즉, 이성에 대한 욕정을 해소하기 위해서가 아닌 자식을 낳고 가정을 꾸리기 위한 목적으로 결혼을 하며 인간의 삶에서 꼭 필요한 일을 한다. 특히 남성의 수가 여성의 수보다 적은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유일신 알라의 종교 이슬람을 따르는 여성은 선한 마음을 가진 어머니이며 아이들에게 영원한 훌륭한 스승이다. 
인간의 삶에서 첫 번째 스승은 바로 여자 즉 어머니인 것이다. 그래서 알라께서는 여성으로 하여금 아이들을 가르치고 양육하는 열망을 마음속에 확고히 하도록 하셨다. 여성들의 마음속에 남성들보다 더 많은 애정과 자비를 심어주셨다.
이슬람에서 일부다처를 허용하지만 그것은 첫 번째 부인이 아닌 두 번째 부인에게 공정한 대우와 평안히 살 수 있는 집과 부양을 의무화했다. 한집에서 여러 부인들을 살게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서로 분리시켜 놓아야 하고 그녀들 자신들 스스로가 가정의 안주인이며 어머니인 것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

8. 카바의 건립

“그대여 기억할지니 아브라함과 이스마일이 그 집(카바)의 주춧돌을 세우며 주여 저희들로부터 우리의 기도를 받아주소서 주여 당신이야말로 들으시고 아시는 분이옵니다 주여 저희가 무슬림으로서 당신께로 귀의케 하여 주옵소서 저희 후손들도 무슬림의 움마를 형성하여 당신께로 귀의케 하여 주소서 당신을 경배하는 방법을 알려 주옵소서 저희들에게 관용을 베푸소서 당신은 진실로 너그롭고 자비하시도다” (바까라장 127절)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젊은 이스마일과 함께 카바를 건립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기꺼이 카바가 유일신을 믿는 자들의 중심이 되도록 카바의 건립을 이행하였다. 당시 아브라함이 카바의 주춧돌을 세우며 그 위에 그 분의 발자취를 남기셨으며 그것은 현재까지도 알라의 능력에 대한 증거로 남아있다. 그것은 멕카의 성지에 알라에 대한 신앙심과 그분의 유일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처음 주춧돌을 세운 사람이 아브라함이며 MAQAM IBRAHIM 이라 불린다. 
이 성지에서부터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아랍 사회에 알라의 교리를 전파하여 아랍에 유일신의 교리와 다와가 퍼졌다. 또한 이 성지에서 최후의 사도이자 예언자이신 무함마드(그분께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기를)의 가르침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기억할지니 우리(하나님)는 그집(카바)을 인류의 안식처 및 성역으로 만들었으니 기도를 드리기 위해 아브라함이 멈춘 그곳을 경배의 장소로 할 지어다 또한 똬아프를 행하고 엎드려 경배하는 자들을 위해 나의 집을 정화할 것을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에게 명령하였느니라” (바까라장 125절)
아브라함이 카바 건립을 완성하고 난 후 주님께 다음과 같이 기도를 올렸다.
“아브라함이 기원하였더라 주여! 이곳을 평화로운 곳으로 하여 주소서 하나님을 믿고 내세를 믿는 이들에게 풍성한 과실들을 주옵소서 이에 하나님이 말씀하사 불신하는 자들을 당분간 만족하게 하다가 불지옥으로 비참한 여행이 되게 하리라”(바까라장 126절)
그리고 나서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알라께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다.
“주여 저희들로부터 우리의 기도를 받아주소서 주여 당신이야말로 들으시고 아시는 분이옵니다 주여 저희가 무슬림으로서 당신께로 귀의하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 후손들도 무슬림의 움마를 형성하여 당신께로 귀의케 하여 주옵소서 당신을 경배하는 방법을 알려 주옵소서 저희들에게 관용을 베푸소서 당신은 진실로 너그럽고 자비로우시도다 주여 당신의 말씀을 전하고 성서와 지혜를 가르쳐 그들을 당신께로 인도할 선지자를 보내 주옵소서 그리고 그들을 청결케하여 주옵소서 진실로 주님은 위대하시고 지혜로 충만하시도다”

9. 아브라함의 그의 백성들을 위한 다와

아브라함의 종교가 이슬람인 것은 다음 절에 명확히 나와 있다.
“주께서 그에게 내게로 귀의 할지어다 라고 했거늘 만유의 주이신 주님께로 귀의했나이다 라고 말했도다”(바까라장 131절)
이 청결한 교리는 이슬람의 교리이며 아브라함은 그의 가족들과 자손들을 다신교도가 아닌 무슬림으로 만들었다.
꾸란에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스마엘과 야곱에게 유언한 것을 언급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그의 자손들에게 그의 종교를 따르라 했으며 야곱도 그랬다 실로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신앙을 선택하여 주셨나니 무슬림으로서 그 안에서 생애를 마칠지어다 야곱이 죽음에 이를 때 너희가 지켜보고 있었나니 야곱이 그의 자손들에게 이르길 내 다음에 선지자인 아브라함과 이스마일과 이삭의 신인 하나님만을 경배하며 그분(하나님)에게만 순종하나이다 라고 하였더라”(바까라장 132-133)
이 꾸란 구절에서 아브라함이 믿고 그의 자손들이 믿는 교리가 이슬람이며 그들이 지고하신 알라의 유일성을 선교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이 주님께 말하기를 [주여 저희가 무슬림으로서 당신께로 귀의케 하여 주옵소서 저희 후손들도 무슬림의 움마를 형성하여 당신께로 귀의케 하여 주옵소서 당신을 경배하는 방법을 알려주옵소서 저희들에게 관용을 베푸소서 당신은 진실로 너그럽고 자비하시도다 ]
그의 기도는 그의 자손들을 알라의 종교 이슬람을 따르고 이슬람의 사도들을 따르도록 인도하였다.
“주여 당신의 말씀을 전하고 성서와 지혜를 가르쳐 그들을 당신께 인도할 선지자를 보내 주옵소서 그리고 그들을 청결케하여 주옵소서 진실로 주님은 위대하시고 지혜로 중만하시도다”(바까라장 129절)
그리고 그의 기도에서 메카 백성들을 위하여 평화와 은총 그리고 풍요를 알라께 구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알라께서는 이를 들어주셨다. 이 세상에서 어느 곳도 메카처럼 평화롭고 악이 없는 곳은 없으며 메카에 들어가거나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도 평화와 이슬람이 깃들어있다. 
“이브람힘이 기원하였더라 주여 이곳을 평화로운 곳으로 하여 주소서 하나님을 믿고 내세를 믿는 이들에게 풍성한 과실들을 주옵소서” 
성스런 메카로 가는 모든 사람들은 메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은총과 축복이 넘치는 것을 볼 수 있다. 겨울에 겨울 과실과 함께 여름의 과실이 있고 여름에 또한 그러하다. 여기서 과실이라는 의미는 생활에 유용한 모든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얻을 수 있는 메카는 진실로 성스러운 곳이며 평화로운 곳이다. 알라께 감사를 드리며 알라만을 경배하고 그 분만을 경외하며 알라의 사도들과 예언자들을 따르겠나이다.
지고하신 주님은 진정으로 자비로우십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알라께 드렸던 기도와 함께 논문 “아브라함(그 분께 평화가)의 생애”를 마무리 짓는다.
[주님이시여 저로 하여금 예배를 드리게 하시고 주님이시여 저의 기도를 들어주사 저의 자손들 또한 예배를 드리게 하시고 주님이시여 저를 용서하시고 저의 부모님과 심판이 있게 되는 날까지의 모든 믿는 자들에게 관용을 베푸소서]

질문과 답

많은 사람들이 왜 알라께서는 시리아 지방에 한정해서 즉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사도를 보내셨는지 질문을 한다.
거기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1) 알라께서 가장 잘 알고 계시며 그분께서 뜻하시고 원하신 바가 있기 때문
2) 많은 사도와 예언자들이 구약과 신약에 언급되었지만 그들 모두가 시리아 지방에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이러한 질문을 한 많은 사람들은 구약과 신약을 읽고 질문한 것이며 이 두 경전(구약과 신약)의 원본은 알라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히 보내 주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경전을 왜곡 시키고 변질시켜서 이 두 경전이 마치 그들의 역사서처럼 만들었다. 그러나 꾸란을 읽었던 많은 사람들은 알라께서 많은 예언자와 사도들을 보내셨으며 그들에게 경전을 같이 보내셨음을 알고 있으며 그 정확한 숫자는 오직 알라만이 아실 뿐이다. 이것으로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된 것 같다. 
꾸란은 최후의 경전이며 완성된 경전이고 이전의 사도들에게 계시되었던 모든 이전의 경전들을 포괄하는 경전으로 그 속에는 알라의 종으로서 해야 할 근본적 교리와 알라의 법 샤리아와 그 외 우리 인간들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언급되었다. 알라께서는 어떤 한 장소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고 장소와 시간을 초월하신 분이시며 사도와 예언자들을 보내 주신다. 
“우리는(하나님)각 민족에게 선지자를 보내어 하나님을 섬기되”(나흘장 36절)
지고하신 알라께서 우리가 알 수 없는 많은 사도와 예언자들을 보내셨으며 오로지 알라께서만 그들과 그들의 수를 알고 계시며 결코 어떤 지역 어느 시대에 한정 지어서 보내지 않으셨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보내셨느냐가 아니라 알라께서 내려주신 경전 즉 인간들을 위한 지침과 인도서로 현세와 내세의 완벽한 정복을 위해 올바른 자들의 바를 길로 인도하고 우리의 적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는 것이다. 
꾸란에 언급된 것처럼 알라께서는 모든 민족과 백성들에게 경고와 복음을 보내셨다. 

 

Video Lectures



학압두 박사(dr. Abdulwahab Zahid haq)의 이슬람 강연
Part 1 
Part2  
학압두 박사의 이슬람 소개
(TV 방송)
Watch(Windows Meida Player)
Watch(RealPlayer) 
이슬람의 기본 Watch 
성꾸란 (KBS) Watch 
이슬람은 평화를 뜻합니다 (June 2006) Watch



약력


* 1941년 시리아 알라포 출생
* 이집트 알아즈하르 대학 졸업
* 이슬람 법학 및 하디쓰 서사 학위 취득 (인도 나드와 뚤알라마 대학)
* 알라포 중등 교사 10년간 역임
* 아프린 알라포 이슬람 중.고등학교장 역임
* 사우디 아라비아 멕카 알히라 솨밀라 대학 교수 역임
* 파키스탄 파루끼야 대학 대학원장 역임
* 박사 학위 취득 (파키스탄 신드 대학)
*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 선교사 (쿠웨이트 종교성 파견)

Q & A

Answer : 학압두 박사 
(dr. Abdul Wahab Zahid Haq)

A: 꾸란은 알라께서 사도 무함마드(하나님의 평화와 은총이 깃들기를)에게 사도의 모국어인 아랍어로 계시하셨다. 아랍어를 모국어로 쓰는 아랍인들의 전통에 의하면 신분이 고귀한 사람은 자신을 가르킬 때 나(I)라는 단수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우리(WE)라는 복수 표현을 하며 다른 사람들은 이에 존경을 표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복수 "WE"에는 알라의 고귀함이 표현되어 있다.

A:이슬람에서 아내는 남편을 위해 아름답게 치장해야 한다. 그러나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들을 위해 치장할 필요는  없다. 더욱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혹의 소지가 있는 치장, 행동, 발걸음, 목소리를 조심하여야 한다. 아내가 얼굴에 화장을 하고 외출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나 집에서 남편을 위한 화장과 향수 사용은 매우 권장한다. 
예배 하기 전  남녀 모든 무슬림들은 우두를 해야 한다. 만일 무슬림 여성이 화장을 하고 있었다면 깨끗하게 화장을 지워야 한다. 화장으로 인해 특정 부분의 피부에 물이 닿지 못한다면 우두를 완전히 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두를 한 다음에는 깨끗한 얼굴로 예배를 한다.

A:  하나님의 사도 무함마드(하나님의 평화와 은총이 깃들기를)께서는 초창기 선교하실 때 새로 입교한 무슬림들에게 무덤방문을 금하셨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무덤을 방문하면 고인이 된 조상이나 가족에게 절을 하고 그들에게 기도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무슬림들이 하나님에게만  기도와 숭배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자 사도께서는 무덤 방문을 허락하셨다. 무덤방문은 무슬림들이 고인이 된 조상을 기억하고 자신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현실을 깨닫고 현세의 남은 인생 동안 서둘러 선행을 해야 한다는 것을 경각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고인이 된 무슬림을 위하여 꾸란의 특정 수랏을 암송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고인의 무덤 앞에서 어떠한 숭배행위나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행위는 하람이다. 
무슬림은 조상에게 음식을 바치고 절을 하는 제사나 차례를 지내는 장소에 가지 않는 것이 좋다. 이웃이나 친척이 남은 제사 음식을 가져와도 그 음식은 하람이다.
제사나 차례의 행사가 끝난 후 단순히 친척이나 가족을 만나기 위해 그들을 방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A: 월세의 보증금은 계약 기간이 만료하면 집 주인으로부터 다시 돌려 받아 내 수중으로 들어오는 돈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자캇을 지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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